▲지난 5월 9일 서울의 한 전통시장에서 상인이 업무를 하며 생방송 중인 윤석열 대통령 취임 2주년 대국민 기자회견을 경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낸 <한국의 중산층은 누구인가?>라는 보고서가 화제를 모았다. 이 보고서가 이목을 끈 것은 실상 중산층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자산을 소유한 이들의 상당수가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 체계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보고서의 조사에 따르면 실제 소득 상위 20% 집단 중 84%는 자신을 중층이라고 봤고, 10%는 심지어 하층이라고 봤다. 본인이 상층이라고 여기는 이는 6%에 지나지 않았다. 보고서는 이러한 불일치가 정책 여론 형성에 왜곡을 가져올 수도 있음을 지적한다.
실제로는 상층이면서 중산층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이러한 '가짜 중산층'은 상류층에 대해 혜택이 집중되는 정책을 '중산층 정책'이라는 여론을 만들어 관철시킬 동기를 가질 수 있다. 높은 소득·교육 수준과 사회적 지위로 여론형성 능력이 있는 이들에게 유력정당들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과잉대표될 수 있다. 그들이 '중산층'이라는 자기인식을 가진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을 가진 정당에게도 상류층을 위한 정책에 찬동할 수 있는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최근 발표된 상속세 개정안은 이런 현상의 리트머스 시험지라 할 만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0일 국무회의에서 이번 상속세 개정을 두고 "중산층 가정의 부담을 덜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주요 정치인들 역시 정부의 상속세 개정안을 반대하면서도 중산층의 부담을 줄이는 개정 방향성에는 찬성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상속세 개편의 두 가지 방향성
이번 상속세 개정안은 두 방향성이 있다. 하나는 기업상속과 초고소득층에 대한 대폭의 세금 감면이다. 대략 연간 1000명 정도인, 상속세 최고세율 50% 적용되는 상속인들은 기본적으로 10%p의 세율인하 혜택을 받고, 최대주주라면 10%p의 할증 폐지 혜택까지 받게 됐다.
즉 총세액의 20~30%를 줄일 수 있게 됐다. 100억 원 낼 세금이 대략 70~80억 원으로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역대급 세수결손과 재정적자가 이어지고 있는 재정 여건에서 해당 조치가 야기하는 감세폭이 현실적으로 매우 크고, 본질적으로는 기업지배구조 및 기업소유의 철학적 문제와 결부되어 있는 만큼 이 세율 조정의 의미는 작다고 할 수 없다.
또 하나의 방향성은 공제규모의 대폭 확대와 과표 조정이다. 지금까지의 상속세는 5억 원의 일괄공제와 자녀 1인당 5천만 원의 공제 중 선택할 수 있었다. 그래서 대체로는 5억 원의 일괄공제를 받는 것이 유리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은 자녀 공제를 1인당 5억 원으로 확대한다. 자녀가 둘이라면 공제액은 10억 원이 되고, 배우자가 있다면 공제 금액은 최소 15억 원으로 대폭 확대된다. 여기에 원래 자녀공제 옵션에 들어 있는(일괄공제 5억 원을 선택하면 받을 수 없었던) 기초공제 2억 원이 추가되어 공제액은 17억 원까지 늘어난다. 즉 상속재산 17억 원까지는 상속세가 0원이 된다. 혜택 규모는 자녀 수에 따라 달라지지만 기본적으로는 공제액이 크게 늘어 상속세 면제가 대폭 증가하는 개정인 것이다.
피상속인 수 관련 자료를 국세청이 공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세법 개정으로 발생하는 상속세 면제 숫자를 정확히 추산하기는 어렵지만 간접적으로 어림해 볼 수는 있다. 지난해 기준 총상속재산 10억 원 이하는 5661명으로 전체 상속인의 28.4% , 20억 원 이하는 1만 3966명으로 전체의 70.0%에 이른다. 대체로 상속인들이 2명 안팎의 피상속 자녀가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전체 상속인의 절반 가량이 이번 개정안으로 상속세 대상에서 면제될 것으로 보인다. 상속세를 내더라도 공제 확대로 세액은 대폭 줄어들어 고액 상속세를 부담해야 하는 이들일수록 혜택 금액은 대폭 늘어난다.
최고세율을 조정하는 첫 번째 방향성은 누구도 중산층과 관련된 문제라고는 여기지 않을 것이다. 상속세 최고세율에 도달하려면 온갖 공제를 다 빼더라도 최소 30억 원을 물려줄 수 있는 상속인 상위 0.3%는 되어야 한다. 어떤 기준으로도 이들을 중산층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즉 윤석열 대통령이나 민주당이 '중산층 정책'으로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부분은 공제액을 대폭 확대하는 두 번째 방향성에 대한 것이다.
상속세가 중산층 세금이 되었다는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