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지하주차장 화재로 전기가 모두 끊긴 인천 서구 청라동 아파트 주민 A씨가 계단으로 11층 집까지 오르고 있다. 지난 1일 이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서 벤츠 전기차가 폭발하면서 40여 대 차량이 전소되고 100여 대 차량이 그을림 등의 피해를 입었다.
김성욱
"집에 환자가 있어서 다른 데로 못 가."
3일 정오께, 인천 서구 청라동에 위치한 20층 아파트. 한 70대 남성이 매캐한 냄새가 나고 시커먼 분진이 쌓인 아파트 계단을 힘겹게 걸어 오르고 있었다. A씨의 손엔 김밥 세 줄이 담긴 비닐봉지와 핸드폰 충전기가 들려 있었다. A씨는 계단 중간에서 세 번을 멈춰 서서 호흡을 고른 뒤에야 집이 있는 11층에 다다랐다. 엘리베이터는 물론 이 아파트의 모든 전기와 물이 사흘째 끊긴 상태다.
A씨는 지난 1일 오전 6시 15분 지하1층 주차장에 있던 벤츠 전기차가 폭발해 대형 화재가 난 아파트의 주민이다. 이번 화재로 차량 40여 대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완전히 탔고, 100여 대가 그을림 등의 피해를 봤다.
다행히 인명 사고는 없었지만, 화재 후 이틀이 지난 이날까지도 지하주차장 내부는 물론 아파트 단지 곳곳에서 메스꺼운 냄새가 심하게 났다. 지하주차장 내 천장을 떠받치는 콘크리트 기둥들도 까맣게 그을려 있었고, 천장에 설치된 배수관들이 터지거나 무너져 내려 주차장 여기저기서 물이 새고 있었다. 주민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린 채 가방이나 캐리어를 끌고 소지품을 챙기러 오갔다. 지하주차장 현장에서 임시 전기 배선 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은 어지럽고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불이 난 지점 바로 위에 있는 아파트 동은 거의 모든 주민들이 대피소나 모텔, 지인 집으로 떠난 뒤였지만, A씨는 뇌병변 장애로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70대 아내 때문에 이 아파트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A씨는 "하루 종일 문을 열고 환기를 해 지금은 좀 낫지만, 어젯밤에 잘 때도 가스 냄새, 기름 냄새 같은 불 냄새가 심했다"고 했다. 그는 "불이 난 날엔 새까만 연기 때문에 앞뒤 창문으로 아무것도 안 보였다"며 가슴을 쓸었다. 사고 당일 불은 8시간여 만에 잡혔는데, A씨 부부는 그날도 구조되지 못하고 집 안에서 이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고 했다.
현재 단전·단수로 인해 A씨 부부는 화장실도 못 쓰고 밥도 못 짓고 있었다. 이날 인천은 34도까지 오를 정도로 더웠지만 선풍기도 못 틀었다. A씨는 냉장고를 열어 보이며 "며칠 지나니 음식이 상하는지 냄새가 난다"고 했다. A씨는 "아내 소변은 요실금 속옷으로 해결하고 있고, 먹은 게 없어 대변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전기가 끊겨 아파트 방송도 안 나오는데, 혹시 문제가 생기면 연락을 받아야 하니 주변 식당에 갈 때마다 핸드폰을 충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주말까진 어떻게 버티겠지만, 그 이상은 힘들다"고 했다. 아파트 관리소 측은 "월요일부터는 전기와 물이 해결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