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현실감으로 등이 서늘해지는 김부장 시리즈
최은영
제목 대로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은 '자가'와 '대기업'에 취해 셀프 과대평가를 하다가 곤경에 처한다. 전지적 시점에서 보니 과대평가지만 내가 그 상황이라면 딱히 다를 거 같지도 않다. 타산지석에 저절로 등이 서늘해진다.
정대리, 권사원 편은 내 아이들의 10년 후 같다. 권사원처럼 자기 앞가림을 할까? 아님 정대리처럼 오늘만 살다가 오늘내일 세트로 망하는 선택을 할까. 공포물 못 보는 나는 이런 상상이 훨씬 더 오싹하다. 책을 덮고 3층 노트북 구역으로 올라간다.
지난주에 3층에서 쓴 기사 두 개 모두 오마이뉴스 메인에 올라갔다. 공간이 주는 좋은 기운 때문이라고 믿고 새로운 기사를 시작한다. 반 썼는데 알람이 울린다. 도서관 피서에 취해 애들 굶기는 애미가 될까 봐 미리 맞춰놓았다.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간다. 전기레인지 3구가 뜨겁게 달아올라 저녁상이 차려진다. 체감온도 50도, 다시 탈출해야 한다.
두 번째 탈출은 시립 수영장이다. 강습 끝나기 전에 힘들다며 나가버리는 회원들 덕에 마지막 10분은 거의 개인레슨이다. 4개 레인에 나 혼자일 때도 있다. 힐튼 호텔 상속녀 패리스 힐튼이 본인 수영할 때 전체 레인을 비운다고 했든가. 이정도면 간헐적 패리스 최튼이라 해도 되겠다.
아침부터 폭염경보가 울렸던 날, 깨어있던 15시간 중 덥다고 느낀 시간은 두 끼 식사를 준비하던 3시간 정도다. 나머지 12시간은 완벽하게 시원했다. 그러느라 들인 비용은 마을버스 요금이 전부다. 스타벅스 커피 한 잔보다 싸다.
이만큼 싼 값으로 이렇게 만족스러운 피서를 하는데는 세금이 구축한 인프라 덕이 크다. 대한민국 국민성이 후졌다느니 어쩌느니 해도 이만한 인프라를 누리는 나라에 태어난 게 감사하다.
나 어릴 때부터 친정엄마는 "남에게 욕 안 듣고, 피해 안 주면서 내 속이 편하면 그게 최고 인생이야"라고 자주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최고 인생'까지 가려면 남들에게 좀 부러움을 사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엄마 말이 와닿지 않았다.
SNS에 올릴 만한 화려한 피서지를 보면 쫄보인 나는 카드값이 먼저 생각나서 속이 답답해진다. 답답한 속이 만드는 심리 폭염은 에어컨도 소용없다. 나는 딱 그만큼 깜냥을 가진 사람이란 걸 이젠 받아들인다.
푸른 바다도, 고급 리조트도 없는 시립 도서관과 수영장은 어디 내보일 피서지는 아니다. 대신 내 속이 편하다. 내 하루를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맞추는 대신 나에게만 묻는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엄마가 말한 최고 인생은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세금은 그 최고를 아주 많이 도와준다. 거듭 고마운 마음이다.
자신이 행복한가 아닌가보다도 남들에게 행복하게 보이나 안 보이나에 더 신경을 쓰는 사람이 많다. 기준이 남에게 있으면 언제든 스트레스가 생기기 마련이다. 상상만 해도 벌써 더워진다. 그러니 그런 기준 버리고 세금으로 같이 피서 가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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