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과 길조를 상징하는 돼지인형과 네잎클로버
픽사베이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코로나 팬더믹 시대,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러나 내가 근무하는 곳은 주택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 아니라 기업의 사무실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고, 코로나로 인하여 바이오 회사들과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호황을 맞으며 직장을 다닐 때와 비슷한 소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 코로나로 인하여 누구를 만나는 것이 쉽지도 않은 시기여서, 나는 자격증 시험에 집중해 자격증을 취득하고 작년에 내 이름으로 된 사무소를 열었다. 처음에는 이 모든 것이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결실이라 생각했고.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구나,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도 내가 열심히 살려고 노력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생각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초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고 고금리 시장으로 환경이 변화면서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자격증을 따고 내 사무소만 열면 돈은 알아서 들어올 것'이라던 나의 희망은 급변한 상황에 산산이 부서졌다.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시장이 완전히 변해버렸다. 그렇게 어려운 상황이 몇 개월 이어지던 중, 평소 알고 지낸 고객과 통화 중에 어떤 회사가 사무실을 찾고 있는데 조건에 맞는 사무실을 구하지 못해서 다른 지역으로 알아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회사에 내가 전화를 걸어, 담당자를 찾아 필요조건을 확인했는데, 그 회사가 필요한 면적의 사무실은 아쉽게도 없었다.
그래서 되면 좋고 안되면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공간을 나눠서 사용해도 괜찮다면 필요한 면적이 있다'는 제안서를 보냈고, 결국 이들은 그 사무실을 계약하게 됐다. 올해 대운이 들어왔냐면서 주변 사람들은 부러워했다.
내가 한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돌아보면 난 정말 크게 한 것이 없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내가 제안한 사무실의 조건은 절대 받을 수 없는 제안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한번 논의는 해보자고 회의하던 중에 회사의 중요한 파트너사 대표가 방문했고, 내가 보낸 제안서를 논의하는 얘기를 듣고 자신들도 그렇게 사용한다고 있다고 얘기했단다, 이 얘기를 들은 결정권이 있는 임원이 그러면 우리도 해보자고 해서 계약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제안서를 만드는 데 큰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파트너사의 대표가 그 시간 그 자리에 지나갈 수 있도록 준비하지도 않았다. 다른 부동산 사무소들도 나와 같은 제안은 기본적으로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계약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운이었다. 그때 내가 깨달은 것은 운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비슷하게 노력하고 같은 능력이 있어도 운이 따라주는 사람이 성취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난날 내가 사업에 실패했을 때, 당시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시장 상황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는 훗날 내가 운영하던 곳에 다른 회사가 들어와 같은 사업을 했는데 대박이 났다고 한다. 주변이 그 사업에 맞는 생태계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불과 1년 사이에 말이다. 이건 노력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운의 문제였다.
직장 다닐 때도, 이직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심심해서 한 행동을 좋게 봐준 상무님이 계셨고, 당시 대단위 토목공사 현장이 많았기에 중장비 부품 수요가 많아져 회사는 성장할 수 있었고, 회사를 옮길 생각이 없을 때 나에게 좋은 제안을 해준 사촌 형님과 노는 거 좋아하는 내가 코로나로 인해 놀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자격증 시험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내가 공부하는 동안 묵묵히 나를 도와준 동료들도 있었다.
따져보면 이건 나의 노력이나 능력으로만 이룬 것이 아니다. 나에게 찾아온 행운이었다. 나의 노력도 있었지만, 그건 전체의 일부이고, 운이 더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나는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
젊어서 사업에 실패했을 때는 큰 노력은 했지만 불운했고, 그 후부터는 노력보다는 행운이 따라 주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이런 행운이 따르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애쓰는데도 여전히 어렵고 힘들다. 이런 이들에게 언젠가 좋아질 테니 용기 잃지 말라고 나는 말할 수 없다. 왜? 그들에게 행운이 올지 안 올지 나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불공평함을 느낀다. 누구에게는 찾아가는 행운이, 누구에게는 가지 않는다. 기준이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는 그저 운, '복불복(福不福)'이다. 이 과정을 고민하다보니, '나에게 찾아온 행운이니 나만 좋으면 되는가?'라는 질문이 생겼다. 내가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내가 양보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찌하면 좋을까?
받은 행운을 다시 돌려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