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와 인터뷰 하는 신영전 한양대 의과대학 교수
박영록
"학생들아, 기다리마. (중략) 몸과 마음이 부쩍 성장한 구릿빛 얼굴로 돌아오라."
신영전 한양대 의과대학 예방의학 교실 교수는 한겨레 칼럼을 통해 곧 의사가 될 의대생들이 '좋은 의사의 자리로 건강히 돌아오길' 기도하는 마음을 전했다. 텅 빈 강의실에서 학생들이 나중에 들을 강의를 녹화하면서.
2024년 2월 윤석열 정부의 '의대 입학 정원 증원' 발표 이후 의사-정부 간 강 대 강 대치, 그로 인한 의료 파행이 5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환자들은 불안과 고통 앞에 놓여 있다.
그가 말하는 '좋은 의사'의 자리는 어디일까. 한국 사회에는 왜 '좋은 의료정책에 대한 논의'보다 '전문가 이기주의'만 득세하는 것처럼 보일까. 질문들에 답을 얻고자 6월 18일 서울 한양대 의과대학 제1의학관 세미나실에서 신영전 교수를 만났다.
신 교수는 1994년 참여연대 출범 당시 국민최저선확보운동과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작업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참여연대와 함께한 건강연대 정책위원장(2006-2010),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1999-2024) 등을 맡아온 참여연대의 30년 지기다. 전문가로서 학문의 공공성 확보에 힘을 쏟는 이유도 물었다.
"늦게 의사가 되더라도... '어떤 의사'로 돌아오는지가 중요"
-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임상의사 말고 연구자의 길을 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의대생일 때 임상실습도 하고 인턴도 했습니다. 좋은 의사가 되려면 공감 능력과 회복력이 뛰어나야 합니다. 저는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은 높은 편이었지만, 환자의 아픔에서 빠져나오는 회복력이 떨어졌습니다. 좋은 임상의사는 자신의 건강함을 환자에게 전해야 하는데, 저는 오히려 환자의 아픔에 같이 아팠어요. 제가 잘하는 것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 교수님이 잘하는 분야가 바로 '예방의학'인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의녀 장덕이 말해요.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일은 병이 들지 않게 하는 것이다.' 중국 명의 편작도 말했습니다. '가장 훌륭한 의사는 병이 나기도 전에 미리 알아내어 그 병에 걸리지 않게 해주는 의사'라고. 예방의학은 병에 걸리지 않게 하거나, 일찍 발견해서 치료하도록 돕는 학문입니다. 개인적인 접근도 중요하지만 집단적인 접근, 정책적 접근이 중요합니다."
- 교수님이 공부하는 '건강정치학'은 어떤 학문인가요?
"'건강'이란 굉장히 정치적인 개념입니다. 누구의 건강을 어떤 제도적 체계 아래에서 보장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정치적인 문제죠. 제 연구 핵심어는 건강, 소수자, 정치입니다. 의료급여 대상자에 대한 보장 강화를 연구했고 국가인권위원회와 만성정신장애인 인권보고서를 함께 썼습니다.
2002년 미국에서 안식년을 보내면서 1990년대 말 대기근으로 북한에서 30만 명이 굶어 죽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한반도에서 태어난 건강정치학 연구자로서 '한반도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라는 신념이 생겼어요. 노무현 정부 때 북한 어린이 영양 지원 사업을 제안하고 실행하게 된 계기입니다."
- 지금 한국 사회에는 건강한 '보건 의료 정치'가 있다기보다는 '전문가 이기주의'만 팽배해 보입니다. 당장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싸고 정부의 정책 설득도 유효하지 않고, 의사 집단의 반대도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골몰한 결과로 보입니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방침이 발표되고 실행되는 과정은 무모하고 생뚱맞았습니다. 영리형 의료 산업·대형병원·의과대학을 가지고 싶거나 정원을 늘리고자 하는 이해관계자의 요구만 반영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국민의 건강을 위해 의료 자원이 부족한 지역과 필수 의료 분야에 의료 자원을 배분한다는 정책 목표를 설득하려면 그를 추진할 구체적 방안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재 정부 정책에는 이 방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의사단체 대응도 문제가 큽니다. 암 환자 등 중증 환자 치료가 늦어지는 방식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대한의사협회는 회비를 내는 일부 개원의들의 목소리를 주로 반영합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 진보적 목소리를 내는 단체는 물론 교수, 전공의, 학생 등 다양한 의사 집단 목소리를 수렴할 수 있는 장치도 능력도 없죠. 머리는 없고 엘리트 의식만 비대합니다. 무엇보다 국민 목소리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죠."
- 의대 정원 증원 방침에 반발해 집단행동을 하는 의대생들에게는 비판보다 '기다리마'라고 하셨습니다.
"학생들에게 희망을 걸지 않는다면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습니다. 학생들의 행동이 환자들의 치료가 늦어지는 것과 직결되지도 않습니다. 매해 1, 2학년 의예과 학생들에게 '어떤 의사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숙제를 내면 '돈보다 사람이 먼저인 의사', '마지막 순간에는 생명을 선택하는 의사', '환자로부터 사랑받는 의사' 등의 답이 돌아옵니다.
학생들에게 지금이 선배 의사들의 위력에 눌리지 않고 스스로 성찰하는 시간이 된다면, 학생들이 1~2년 늦게 의사가 되더라도 본인에게도, 환자들에게도 좋을 것입니다. 그들이 어떤 의사로 돌아오는지가 미래 한국 의료체계에 중요하니까요. '첫 마음'으로 돌아오길 바랍니다."
- 정부와 의사 간 힘겨루기 싸움에 환자들의 고통과 불안이 커집니다. 이 사태에 출구가 있을까요?
"미래를 예측하고 전망하는 것보다 이를 어떻게 맺을 것인가를 논의하고 마련하는 게 중요합니다. 정부가 공언한 '지역별·분야별 의료 자원 적정 배치' 같은 목표를 실현하지 못하면 확대한 정원 수를 다시 줄이는 '조건부' 정책 운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배출 의사 수는 늘렸는데 모두가 '서울에 위치한 비필수 의료 돈벌이 병원'에 집중된다면, 결국 그 끝은 경쟁 과열 및 의료 민영화로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 이번 의료 파행 사태에서 한국 사회가 놓친 게 있을까요?
"의료의 공공성을 지키고 의료 민영화를 막아야 한다는 논의입니다. 우리의 몸은 생존의 밑천입니다. 이를 시장, 구매력에 맡긴다면 시민의 삶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죠. 생명권, 건강권 같은 기본권이 상품화되는 극단적 병폐가 나타날 것입니다.
이를 막아내는 데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이번 의사-정부 대결에는 시민이 빠져 있습니다. 과거에는 의료보험 통합 논의 등에 진보적 시민단체가 논의의 물꼬를 틔우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스웨덴이 살트셰바덴 협약을 통해 노동자와 경영진을 한 테이블에 앉힌 것처럼, 탁월한 중재자의 역할을 시민사회가 할 수 있습니다.
희망의 근거 역시 시민에게 있습니다. '의료 공공성'에 대한 믿음을 시민들이 포기하거나 철회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