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의 지속이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닐뿐더러, 불평등과 빈곤을 해결하지 못한다.
Unsplash Towfiqu barbhu
소비는 '언어'가 되었다. 그 언어 이면에는 나와 너, 우리와 너희를 '구분 짓기'하려는 욕망이 깔려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의 <구별짓기>(1979)에 따르면 차이를 위한 소비는 '너와 나의 구별짓기'다. 명품의 소유는 희소성의 소비다. 사람들은 그 사물 자체를 소비하기보다는, 자신을 타인과 구별짓는 기호로서 사물을 대상화한다. 소위 상류층은 적극적으로 달아나기 소비(flight)를 함으로써 차별화한다. "매진 임박", "한정 수량"이라는 종편 생중계는 어서 상품을 소유해야 한다는 욕망으로 이끈다. 포모 증후군(FOMO Syndrom: Fear of Missing Out)의 일종이다.
소비는 '야누스'다. 군중 속의 고독이 형용모순이듯, 소비사회에서 '풍요 속의 빈곤', '풍요 속에 불평등'도 현대 소비사회의 특징이다. 경제성장의 지속이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닐뿐더러, 불평등과 빈곤을 해결하지 못한다.
소비는 소비자를 자유롭게 하는가? 소비는 소비하는 주체에게 소비만큼 행복을 가져다주는가? 현대사회에서는 소비로 말하며, 소비가 언어다. 누구도 소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은 조건 속에 태어나고 조건적 자유를 누린다고도 할 수 있다. 무조건적인 자유란 없다.
하지만 우리를 불편케 하고 부자유스럽게 하는 조건들을 넘어서고자 하는 의지나 없애려는 노력이 자유이고 행복이다. 돈 없이 살 수 없지만 돈만으로도 살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다. 쇼펜하우어가 얘기하듯이, 자신의 내면적인 만족이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남들에게 행복해 보이기를 소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 안에서 평화롭게 살기보다는 남에게 나를 내어 맡긴다. 욕망은 계속 미끄러짐의 연속이다.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내가 지금 내 손에 무엇을 쥐고 있는 것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무엇을 쥐고 있는 나는 누구일까를 되돌아보며 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