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마트는 물건이 한 눈에 들어와 장 보는 시간이 절약되고 편리하다.
윤용정
마트를 나와 집 쪽으로 걸어가다가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앞집 어르신을 만났다.
"어디 갔다 와?"
"네. 장 보러요."
"요새 뭐 해 먹어?"
앞집 어르신은 어쩌다 길에서 마주치면 그냥 보내지 않고 이것저것 근황을 물으신다. 우리 가족 보다 두어 달 일찍 우리 빌라에 이사 와서 살고 계셨고, 내가 막내딸을 낳았을 때 소고기랑 기저귀를 사다 주셨다. 앞집 어르신은 부모님 보다 우리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더 많이 보셨다.
다른 곳에는 없는, '관계'의 인프라
우리 집 아래층에는 비슷한 나이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며 같이 여행을 다닐 만큼 친하게 지낸 가족이 살았다. 그 가족은 얼마 전에 이 낡은 동네, 20평대 좁은 빌라에서 아이들을 키우기에 불편하다며 경기도의 한 신도시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아래층 가족이 이사 간 뒤, 나도 고민이 많았다. 우리 부부는 결혼하고 거의 2년에 한 번 꼴로 전세를 옮겨 살다가 큰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직전에 이 빌라를 샀다. 학교와 도서관, 공원, 지하철, 시장이 가까워 생활이 편리하고 물가가 싼 편이라 좋았다.
하지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아파트 값을 보면 한숨이 나왔다. 형편에 맞게 빌라를 살 게 아니라 무리한 대출을 받아서라도 아파트를 샀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아이들이 크면서 집이 비좁아지기도 했고, 낡고 지저분한 골목길 대신 잘 가꿔진 산책로가 있는 아파트에 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서울 아파트는 이제 내가 아무리 무리한 대출을 받아도 살 수 없는 금액까지 올라갔기에, 우리 집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경기도 신도시로 이사를 가볼까 싶었다.
내가 이사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막내딸은 즉각 눈물을 글썽거린다.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기 때문이다.
"친구는 이사 가서 또 사귀면 되잖아. 더 넓은 집에 네 방까지 생기는데 그게 더 좋지 않아?"
"난 싫어. 이사 가도 전학은 안 갈 거야!"
첫째와는 여덟 살, 둘째와는 여섯 살 차이가 나는 막내딸. 막내가 태어났을 때, 첫째, 둘째의 친구들과 그 엄마들 사이에서 정말 인기가 많았다. 어딜 가나 서로 안아주겠다고 줄을 섰고, 문구점, 세탁소, 마트 사장님 등 이웃들의 관심도 많이 받았다.
그런 이웃들과 오랜 시간 알고지낸 친구들이 이 골목, 저 골목에 살고 있으니 아이가 밖에 혼자 놀러나가도 나는 크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막내딸을 키운 건 나 혼자가 아니라, 이 마을 전체가 함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