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산내골령골학살사건 제74주기 제25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가 27일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골령골에서 개최됐다. 사진은 헌화 분향을 하며 제단에 봉투를 올리고 있는 정정애(84)씨.
오마이뉴스 장재완
"아버지가 여기서 돌아가셨다고 자식들에게 말도 못 했어요. 혹여나 피해가 갈까 봐."
팔순의 노모는 아버지의 제사상에 봉투 하나를 올려놓았다. '과일이라도 하나 올려야 한다'며 정성스레 아버지의 이름과 '장녀 정정애'라고 자신의 이름을 적어 올렸다.
정정애(84)씨는 1948년 7살 나이에 아버지와 헤어졌다. 여수에 살고 있던 그녀의 아버지는 여순사건 관련자라며 경찰에 끌려가 1950년 6월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대전형무소 재소자들과 함께 처형됐다.
그 뒤 그녀는 자식들이 빨갱이 새끼라는 오명으로 피해를 입을까 봐 아버지의 이름조차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어디 묻혀 계시는지 알기만 하면 내 죽기 전에 찾아가서 술 한 잔 올리고 싶다'던 그녀는 70여 년이 지나서야 아버지가 묻혀있는 골짜기를 찾아냈다.
'아버지가 많이 그리우셨느냐'는 질문에 "아버지 없이 산 고생은 정말 말로 다 못해요"라고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억울함과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 산 70여 년. 이제야 아들, 딸과 함께 위령제를 찾아 아버지 이름 앞에 엎드려 눈물로써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정씨의 아버지와 같이 여순사건 또는 제주 4·3사건 관련자, 정치범 등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 등이 1950년 6월 28일부터 20여 일 동안 이승만 정부의 군·경에 의해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골령골에서 처형됐다. 그 규모는 최소 3000명에서 최대 7000명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아무런 법적 절차 없이 무고하게 학살된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대전산내골령골학살사건 제74주기 제25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가 27일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골령골에서 개최됐다.
대전기독교회협의회 사회선교위원회와 천주교대전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원불교 대전충남교구 등 3대 종단의 종교 제례 이후 시작된 이날 위령제는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묵념과 유족대표 인사, 헌작, 추도사, 추모공연, 퍼포먼스, 헌화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정부와 진실화해위, 혼쭐 내 제정신 차리게 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