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꽃, 피다(6학년 마무리 발표회 장면)20년 겨울, 6학년 학생이 자서전의 내용 중 일부를 발표하고 있다.
지혜학교
여기,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쓰는 학생들이 있다. 지금껏 자신을 둘러싼 바깥일들에 매진하다가 처음으로 자기 자신에게 귀를 기울인다. 19년 동안 자기 안에 쌓여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지금 이 자리에 끄집어 내어 곱씹어본다. 후회, 그리움, 만족, 안타까움... 여러 가지 기억들에 감정들이 묻어 나온다. 지나온 자신의 삶이 새삼스럽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이 휘몰아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성찰하는 힘, 자신감 등을 기를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과 화해하는 일이다. 수년간 자서전 쓰기를 이끌어 온 담당 교사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무엇보다 자서전 쓰기 활동은 내가 누구인지를 인식하게 해 주고, 나 자신과 화해하는 치유의 효과가 있습니다. 때문에 자서전 수업의 첫 번째 수업부터 늘 강조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정직하고 진솔해야 한다. 나의 내밀한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은 용기 있는 일이다." 정직하게 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을 압니다. 인생에는 누구나 숨기고 싶은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나의 치부를, 상처를 드러내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요.
자서전 쓰기 수업은 첫 번째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 용기를 내어 자기 자신과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고비를 넘어야만 학생들이 자기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마음을 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 동안 학생들을 만나보니 그들은 생각보다 자서전 쓰기에 꽤 진지하게 임합니다. 입으로는 '안 쓸거예요.' '그 이야기는 부끄러워서 절대 못 해요.' '정말 써도 돼요?' 하던 학생들도 자리를 잡고 옛 일들을 끄집어 내다보면 어느새 몰입해서 자기의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미래에서 우리 학생들이 '기술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살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말이 곳곳에 울려 퍼진다. 다들 '기술'이라는 말에 사로 잡혀서 어쩔 줄을 몰라한다. 도대체 어떤 기술들이 얼마나 우리 삶을 뒤흔들어 놓을지 두렵다. 두려운 마음에 이걸 준비해야 할지, 저걸 대비해야 할지 우왕좌왕한다. 마음만 조급하다.
조급해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문득 저 문구에서 '삶'이라는 글자를 눈여겨 본다. 어떤 미래든지 간에 그곳도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다. 그곳에서의 삶이 '좋은 삶'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삶이 그렇듯이) 근본적으로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또 '자신과 화해하고 잘 지내야 한다' 자신과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이웃, 동료와 잘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기술이라는 문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고, 할 수 있으며, 해야 하는지 차분하게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람'으로서 잘 사는 일(Well-being)이 중요하다.
지혜학교 6년 공부의 끝자락에 이루어지는 자서전 쓰기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사람으로 잘 살기 위해서, '자신에게 집중하기'. '돌이켜 봄으로써 나아가야 할 바를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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