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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안구건조증을 모르고 살았던 이유

눈물샘이 막혀 불편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놀라운 몸의 자체치유능력

등록 2024.06.13 16:36수정 2024.06.1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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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샘이 고장났다. 글을 읽다 하품을 하면 차오르는 좁쌀만 한 눈물이 자연스레 사라져야 마땅한데 언젠가부터 그대로 고인 채 볼록렌즈가 되었다. 하품이 연이어 나오기라도 하면 눈물은 기어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우는 모양새가 연출되었다. 


처음엔 눈물이 왜 안 없어지는지를 몰라 손등으로 대충 훔치다가, 그래도 물기가 남기에 흡수력이 더 나은 옷소매로 훔치다가, 기어이 휴지로 꾹꾹 눌러내고 나서야 글씨가 제대로 보이는 일들이 잦아졌다. 

매일 글을 읽어야 하는데 시도때도 없이 울게 된 나는 동네 안과를 찾았다. 의사는 내 얼굴을 네모난 기계 위에 올려놓게 하더니 진찰 결과 눈물샘이 막혔으니 큰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드라마에서 '큰병원에 가보세요'는 환자가 죽을 병에 걸렸음을 암시하는 대표적 대사가 아닌가. 그래서 나는 그 분위기에 화답하듯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큰병원에 갈 만큼 제가 그렇게 심각한가요?'라고 애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의사는 바늘처럼 날카로운 긴 막대기를 들더니, 이런 걸 코 안으로 넣어서 뚫어야 하기 때문에 여기선 어렵다고 했다. 그 어려운 걸 여기서 자기가 해내보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면 난 굳이 큰병원까지 안 가고 그 의사에게 내 눈물샘을 맡기려 했지만, 의사는 나한테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큰병원에 간 결과, 눈물샘이 아직은 반만 막혔으니 약물치료를 받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거기에 대반전이 있었다. 눈에 안구건조증이 있는데 눈물이 항상 고여 있어 오히려 잘 됐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 번도 안구건조증 특유의 뻑뻑한 증상을 느낀 적이 없던 터라 더 놀라웠다.
 
 눈물샘이 막혀 항시 눈물이 고여 있으니 인공눈물도 필요 없구나.
눈물샘이 막혀 항시 눈물이 고여 있으니 인공눈물도 필요 없구나. 최은경
 
아, 몸의 놀라운 자체치유능력이여! 나의 눈이 눈물샘을 막아 수분을 확보하려는 필사의 몸부림을 치고 있었단 생각을 하니 감동의 눈물이 차올랐다. 앗, 또 수분 보충 완료. 인간의 뇌는 늘 항상성을 유지한다더니, 병원에 왠만하면 가지 않는 나를 잘 아는 내 뇌가 내 몸뚱이를 열심히 관리중인 듯하다.


엊그제 남편 김관장의 선배님 노모 팔순 잔치에 갔다. 돌잔치처럼 귀여운 아가도 없고, 돌잡이 같은 이벤트도 안 하고, 가장 중요한 상품 추첨도 없이 귀 따가운 뽕짝만 불러대는 통에 지루해진 나는 또 하품과 함께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손등으로 해결이 안 돼 휴지를 동원해 계속 닦아내고 있는데, 같이 갔던 김관장 선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남의 팔순 잔치에 와서 뭘 그렇게 울어요" 하는 것이 아닌가. 덕분에 감성 충만한 하객이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눈물샘이 고장나서 불편하단 생각만 했는데, 이제는 그덕에 안구건조증을 못 느끼고 살 수 있으니 고장난 눈물샘이 복덩이처럼 느껴진다. 아니, 안구건조증이 있는 눈에는 고장난 눈물샘이 특효약이라고 주장할 판이다. 큰불은 맞불로 끈다는 말이 있다. 맞다, 병도 병으로 고쳐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인생첫책 출판사 블로그에도 발행한 글입니다.
#안구건조증 #눈물샘 #김관장 #인생첫책 #달지와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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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호기심 많은, 책 만드는 편집자입니다. 소심한 편집자로 평생 사는가 싶었는데, 탁구를 사랑해 탁구 선수와 결혼했다가 탁구로 세상을 새로 배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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