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초대 총리 압둘 라만이 독립을 외치는 장면
여경수
메르데카 광장에서 말레이시아 국립은행 건물을 지나면, 압둘 라만 기념관을 방문할 수 있다. 그곳에서는 말레이시아의 건국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말레이시아 독립과 헌법의 제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압둘 라만이다. 그는 영국과의 협상을 통해서 말레이시아의 독립을 쟁취했다. 지난 1970년 총리직에서 사임하기까지 말레이시아의 건국과 기틀을 다지는 역할을 했다. 말레이시아 국립 박물관에서도 압둘 라만을 기리는 흉상이 전시되어 있으며, 그의 업적을 기리는 전시물이 있다.
말레이시아는 지난 1955년 선거를 통해서 연방입법의회를 구성한다. 당시의 연방입법회의는 헌법을 제정하는 의회의 성격을 지닌다. 우리나라 경우에는 지난 1948년 5.10 선거를 통해서 국회를 구성하고, 국회에서 최초의 헌법을 제정했다. 그해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를 정식으로 수립했다.
말레이시아에서 헌법이 제정될 당시엔 연방주의, 권력분립, 인권보장, 헌법개정절차를 헌법의 가치로 주요하게 다루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말레이시아는 헌법상 연방제와 의원내각제를 채택한다. 다만 말레이시아 역사가 반영된 입헌군주제로 운영되고 있다.
헌법상 말레이시아 국왕은 연방정부 최고의 수반이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에서 군주를 정하는 방식은 특이하다. 말레이시아 13개의 주 가운데 9개주에는 술탄이라고 불리는 각각의 세습통치자가 있다. 말레이시아 국왕은 각 주의 술탄 9명 가운데 5년마다 선출직으로 임명된다. 그러므로 말레이시아의 국왕은 5년 임기의 선출직이다. 그래서 입헌군주제 국가인 영국이나 태국과 같은 국가들과 달리 말레이시아 국왕은 말레이시아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적다고도 볼 수 있다.
말레이시아 헌법과 우리나라 헌법은 여러모로 차이점이 있다. 각각 군주국과 공화국, 연방제 국가와 단일국가, 의원내각제 정부형태와 대통령제 정부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럼에도 양국은 독립의 과정을 거치면서 헌법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헌법을 제정하는 의회를 먼저 구성하였다. 헌법을 제정하고, 그 헌법에 따른 절차로 정부를 수립하였다. 이러한 배경으로 두 국가 모두 헌법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