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서귀포시 한 노숙인 재활시설. 월 4회 이상 출근해야 할 촉탁의사가 월 1일 출근하고 직원 월급여 수준의 돈을 받고 있었다. 해당 시설 관계자도 그런 문제가 있다고 인정했다.
장태욱
서귀포시 L복지시설, 서귀포시로부터 위탁받아 주거 공간이 없거나 알코올 중독인 사람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고 상담·의료·자활·재활 교육 등의 서비스를 시행하는 노숙인 재활시설이다. 지난 1998년 설립된 이후 꾸준히 시설과 인력을 보완해 지금은 원장을 포함해 상근 직원 20명과 비상근(촉탁의사) 1명 등 총 21명이 근무한다. 노숙인 58명을 수용해 돌보고 있는데, 그중 11명은 현재 도내외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L복지시설은 지난 2021년 원장의 비리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적이 있다. 일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당시 K원장은 사퇴했고, 그해 4월에 H씨가 새 원장으로 취임했다. 직원들은 새 원장이 취임한 이후 복지시설이 새롭게 탈바꿈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운영에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대표적인 게 촉탁의사 근무와 관련한 것이다.
노숙인 재활시설에는 1명 이상의 촉탁의사를 고용해야 한다. 촉탁의사란 의사가 상주하지 않는 복지시설과 협약을 체결한 후 주기적으로 방문해 입소자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사를 지칭한다. 노숙인 시설은 촉탁의가 월 4회 이상 방문해 진료해야 하고, 1회 방문 시 8시간 동안 근무하는 게 원칙이다. 보건복지부는 촉탁의사가 월 4일, 하루 8시간 근무하고 사회복지시설 근무자의 기본급에 준하는 급여를 받도록 권고한다.
그런데 L복지시설에서는 그 원칙과 권고가 처음부터 지켜지지 않았다고 한다. 복지시시설은 원칙을 지키는 대신 촉탁의사 출근부를 허위로 작성했다.
L복지시설 직원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촉탁의사가 변경되면서부터 문제가 불거졌다. 2023년 5월까지 S복시시설의 촉탁의사는 서귀포시 모 한의원 원장이었다. 당시 촉탁의사는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꼬박꼬박 L복지시설에 출근해 환자의 건강을 살폈다. 규정상 월 4회 이상인데, 출근횟수를 규정보다 늘려 근무한 것. 한의원 원장이 촉탁의사를 그만둔 후에도 시설 입소자들 가운데 몸이 아프면 해당 한의원을 찾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H원장은 지난해 5월, 갑자기 촉탁의사를 변경하기로 했다. 제주 시내에서 정신의학의원을 운영하는 S전문의가 새로운 촉탁의사로 채용됐다. 복지시설에 입소한 환자 가운데 알코올 질환 환자가 많기 때문에, 한의사보다는 정신의학과 전문의가 입소자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당시 H원장의 판단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새로운 촉탁의사가 너무 바쁜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본인이 운용하는 의원에 일이 많기도 하거니와, 여러 군데 시설과 기관에 상담과 교육을 다니고 있었다. 규정대로 복지관에 출근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월 4회는 출근해야 하는데, 2회 출근하는 정도에서 암묵적인 동의가 이뤄졌다. 실제로는 월 1회 출근하는 달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시설 입소자의 건강을 챙길 상황이 못 되었다. 한 직원은 "촉탁의사는 환자의 기초 건강상태를 파악하고 개선책도 내놓아야 하는데, 잠깐 와서 상담하고 돌아가는 수준에 불과했다"라며 "이렇게 하면 촉탁의사를 두는 게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다.
촉탁의사가 L복지시설에서 받는 급여는 월 260만 원 정도다. 월 1회 출근으로 복지관 직원 한 달 급여를 받아가는 셈이니 직원들은 기가 차다는 입장이다.
복지시설 H원장은 이 급여를 지출하기 위해 직원에게 출근부 조작을 지시한 걸로 알려졌다. 기자가 입수한 출근부에는 촉탁의사가 매주 출근한 걸로 기록됐는데, 촉탁의사 서명은 있지만 이를 확인했다는 담당자의 서명 난은 비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