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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연구자 "밀리환초 조선인 학살사건, 일본은 책임지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고향 광주 찾아 "진상규명 미흡... '강제동원 조선인들의 저항' 명예회복도 필요"

등록 2024.06.07 16:23수정 2024.06.0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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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동원 연구자인 다케우치 야스토(67)씨가 7일 광주광역시의회 시민소통실에서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의 조선인 학살사건인 ‘밀리 환초 학살’에 대한 자신의 연구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광주를 찾은 이유에 대해 "밀리환초 학살사건 피해자는 모두 일제강점기 전남 출신이다. 피해 당사자들의 고향에서 이 사건을 재조명하고, 함께 진상규명에 나서자는 제안을 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 김형호

 
역사교사 출신으로 30년 이상 일제 강제동원 문제를 추적해 온 일본인 사학자가 광주광역시를 찾아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밀리환초 조선인 학살사건' 진상규명 필요성을 강조했다.

밀리환초는(Mili Atoll)는 남태평양에 위치한 마셜 제도의 환초(동그란 모양으로 이어진 산호초)로, 이곳에서는 1945년 3월 '인육 사건'을 계기로 봉기한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를 집단학살한 사건이 일어났다. 피해자 모두 전남 출신이었다.

1991년 한국 일간지, 그리고 2010년대 한시적 정부 기구였던'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조사 등을 통해 일부 알려졌으나, 정확한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 추모사업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일제 강제동원 문제 연구자인 다케우치 야스토(67)씨는 7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 함께 광주광역시의회 시민소통방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회견의 주제는 '1945년 3월 강제동원 조선인 남태평양 밀리환초 칠본섬에서의 저항과 학살'.

역사교사 출신인 그는 1990년 한국 일간지에 실린 밀리환초 강제동원 생환자 인터뷰 기사를 접한 뒤부터 밀리환초 학살사건 등 일제 강제동원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날 발표한 내용은 피징용 사망자 연명부 등 한미일 정부 문서, 강제동원 소송 관련 문서, 일본군 수기 등 자신이 직접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준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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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동원 연구자인 다케우치 야스토(67)씨가 7일 광주광역시의회 시민소통실에서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의 조선인 학살사건인 ‘밀리 환초 학살’에 대해 자신의 연구 결과를 설명하면서 진상규명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다케우치씨가 손에 들고 있는 문서는 '옛 일본해군 군속 신상조사표'. ⓒ 김형호

 
그에 따르면, 밀리환초 조선인 학살사건 발생은 일본군 패색이 짙어지고 보급마저 끊긴 1945년 3월로 추정된다. 일본군이 조선인 군속(강제동원 피해자) 2명을 살해한 뒤 고래고기로 속여 조선인들에게 제공했고, 이후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선인들이 봉기를 일으켰다. 조선인들은 일본군 7명을 살해하지만, 머지않아 일본군에게 떼죽음을 당했다.


강제동원 피해 생환자 일부는 봉기 시점을 1945년 2월 28일로 과거에 증언한 바 있으며, 이들에 대한 학살 시점은 같은 해 3월 18일로 일본군 기록에 나와 있다고 다케우치씨는 밝혔다.

이 사건 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피해자 등 조선인 68명을 미군이 구출한 시점이 같은 해 3월 18일로 미군 문서에 기록돼 있어 봉기 시점과 학살 시점 등 정확한 일자는 규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다케우치씨는 덧붙였다.


이때 사망자는 55명으로 모두 전남 출신으로 조사됐다. 일본 해군 군속 신상조사표에는 총살 32명, 자결 23명으로 기록돼 있다. 시군별로는 담양 25명, 광양 7명, 고흥 5명, 순천 4명, 광산(광주) 4명, 보성 3명, 화순 3명, 광주 2명, 신안 1명, 순천 1명이다.

증언에 따르면, 1942년 3월 전라남도를 비롯해 3개 도에서 2400여명을 실은 일본 해군 배가 부산에서 출항했고, 4월 초 이들 중 800명이 밀리환초에 투입됐다. 나머지 1600명은 인근 다른 섬에 하선했다.

"유골조차 수습 안됐는데... 일본에 책임 묻지 말자는 한국 정부, 정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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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3월 남태평양 밀리환초에서 미군에 의해 구조되는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들 모습을 담은 미군 문서. 수년간 일본군의 탄압과 굶주림 속에 강제노동에 혹사당했던 피해자들의 몸이 비쩍 마른 모습이다. ⓒ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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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남태평양 밀리환초에서 미군에 의해 구조된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들(가운데) 모습을 담은 미군 문서. 수년간 일본군의 탄압과 굶주림 속에 강제노동에 혹사당했던 피해자들의 몸이 비쩍 마른 모습이다. ⓒ 국사편찬위원회

 
다케우치씨는 이날 학살 피해자 55명을 포함해, 일본정부가 한국정부에 제공한 명부를 통해 밀리환초에서 사망한 218명(1942~1945)의 조선인 이름과 주소를 처음 공개하기도 했다. 4명을 제외한 214명은 모두 전남 출신으로, 창씨개명된 이들의 본명이라도 조속히 찾아드려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다케우치씨는 "밀리환초에서의 학살사건은 전남 담양 출신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중심이 돼 일어난 항일 투쟁이자 봉기에서 비롯된 사건으로 누구도 이 사건에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책임지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사건의 완벽한 진상규명이 요구된다"며 "아울러 밀리환초에서 일본군에 저항했던 조선인들은 저항자였다. 그분들의 명예회복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자리에 함께한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내년이면 밀리환초 학살사건이 일어난 지 80년이 되지만, 진상규명은커녕 희생자 유골조차 수습하지 못한 실정"이라며 "일본은 아직 아무것도 책임진 게 없는데 우리 정부는 일본에 더 이상 책임을 묻지 말자고 한다. 이게 정상적인 정부인가"라고 했다.
#밀리환초 #강제동원 #다케우치 #인육 #조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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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라본부 상근기자. 제보 및 기사에 대한 의견은 ssal198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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