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초, 벚꽃놀이가 열려 어우러진 요리아이 입소자들의 모습. 사진출처: 공식홈페이지(http://yoriainomori.com)
어느 날 할머니 한 분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할머니를 진료하던 의사는 "입으로 먹는 건 자살 행위"라며, 유동식을 권했다. 직원들이 교대로 면회를 가서 할머니의 상태를 살폈는데, 그들 모두의 의견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였다.
가족과 상의한 후 튜브를 삽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근거를 논리적으로 제시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은 10년 넘게 서로의 몸을 동기화해왔단다. 이 책 제목 <돌봄, 동기화, 자유>의 일부이기도 한 '동기화'란, 마치 한 몸처럼 현재의 느낌을 함께 느끼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했다. 이후 5년 동안 할머니는 입으로 먹으면서 살아가셨다. 입으로 먹지 못했던 기간은 임종이 가까워진 며칠 동안만이었다.
저자는 자신의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처음 만졌을 때 느꼈던 설명할 수 없는 부끄러움과 생리적인 혐오감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원한 적 없던 상황에 놓여진 두 사람이 온갖 감정의 파고들을 헤쳐나가는 장면들이 펼쳐진다.
밤새 사람을 깨우는 할머니 때문에 한잠도 자지 못한 직원에게 저자는 묻는다.
"아이고, 여덟 번 넘게 일어나셨다니 큰일이었겠네. 그래서 몇 번째 일어나셨을 때 할머니를 때리고 싶었어?"
"그러게요. 여섯 번째 정도였을까요."
"그렇군. 나 같았으면 네 번째에 때리고 싶었을 거야."
이렇게 말하는 장면에서는 저자의 사람 냄새가 폴폴 풍겨왔다.
'사랑' '배려' '선의' 등 비판하기 어려운 말에 기초해 돌봄을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로서는 제어할 수 없는 감정이 있다는 것, 이념과 윤리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가 살아있는 인간에게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동안 돌봄에 대한 아름답고 예쁜 말들을 들으면서, 때로는 거친 말보다도 더 소화가 잘 안 되는 체기같은 것을 느끼곤 했었다. 책을 읽으며, 그 체기의 원인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인간의 나약함과 한계같은, 나를 구성하는 본질적인 부분이기도 한 것을 부정하거나 외면해야만 한다는 강압을 그 아름다움과 예쁨에서 느꼈던 것 같다.
'모든 생명은 먹히고 배설됩니다. 그 과정 속에 나는 살아 있습니다. 먹고 배설하는 것만으로 존재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돌봄은 그 과정을 마지막까지 돕는 일입니다.'
마치는 글에서 저자는 이같이 말한다.
존엄한 삶을 이야기하며, '먹고 싸기만 하는 삶은 무의미하다'는 주장을 종종 접했던 것 같다. 우리 삶에서 가치, 의미, 존엄과 같이 품격있는 것들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를 아직도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위 글을 읽으며 나는 무언가로부터 구원받는 느낌을 받았다.
성경이나 경전 등 종교서가 아니어도, 원래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구하며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나를 구원했던 이 책이 아마도 많은 이들에게 위안과 구원의 손을 내밀 것이라 확신한다.
돌봄, 동기화, 자유 - 자유를 빼앗지 않는 돌봄이 가능할까
무라세 다카오 (지은이), 김영현 (옮긴이),
다다서재, 2024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푸르른 겨울밭, 붉은 동백의 아우성, 눈쌓인 백록담,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포말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제주의 겨울을 살고있다. 그리고 조금씩 사랑이 깊어지고 있다.
공유하기
사람은 원래 밖을 향하게 마련입니다, 치매 환자도요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