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인 황선홍 감독10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이라는 목표 달성에 실패한 한국 23세 이하(U-23) 남자 축구대표팀의 황선홍 감독이 2024년 4월 27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로 귀국한 뒤 인터뷰를 준비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요약] 한국 축구가 올림픽에 진출하지 못하면서 많은 팬이 실망감을 느꼈다. 팬과 미디어는 대한축구협회와 수뇌부를 향한 분노 표출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감정적인 대응이 주를 이뤘지,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시는 못하고 있다. "그동안 하위권이라고 여겼던 동남아 국가들의 경쟁력이 올라왔다. 우리가 어떤 준비를 했나 따져봐야 한다"(김완태 단장) "브라질도 떨어질 수 있다. 올림픽이 대한민국만의 고정석이 아니다. 축구의 질이 떨어진 부분을 분석해서 보여줘야 한다"(오태규 연구원) 등의 소회가 나오는 이유다.
대한축구협회의 대표팀 육성 방식 등이 "기업 관리적인 효율성을 스포츠 영역에 들이대는 것 아닌가"(장익영 교수)는 비판적 시각이 있지만 "아시아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하지 못하는 농구, 배구와 달리 축구는 우수한 자원을 바탕으로 버텨온 종목"(위원석 이사)이라는 우호적 평가도 확인됐다.
올림픽 진출 실패 뒤의 미디어 보도에 대한 비평은 혹독했다. 오태규 연구원은 "과학적이고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더 좋은 축구를 할 수 있도록 미디어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고, 위원석 이사는 "일부 유튜버가 감정 소비적으로 여론을 조성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토론 참가자] 위원석 대한축구협회 이사, 장익영 한체대 교수, 오태규 서울대 일본연구소 객원연구원(전 한겨레신문 스포츠부장), 김완태 프로농구 엘지 전 단장, 사회 김창금 한겨레 기자.
일시: 5월 25일 줌 토론
사회자: 축구는 만국 공통어다. 누구나 관심이 있고, 누구나 한마디 할 수 있는 종목이다. 황선홍 감독의 올림픽팀이 23세 이하 아시안컵 8강전에서 탈락해 파리 올림픽 진출에 실패했는데, 즐거운 일은 아니다.
김완태: 제가 우선 전 뭐 축구에 대해서 그렇게 많은 경험이나 조예가 있는 건 아닌데. 상대적으로 우리보다 하위에 포진돼 있던 동남아 팀들의 활약이 좋았다. 그들의 경쟁력이 많이 올라온 반면, 우리 축구나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들이 어떤 준비를 했나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브라질도 떨어질 수 있는 게 축구다. 대한민국만의 올림픽 고정석은 아니잖은가. 그렇다면 미디어는 그것들을 자세하게, 어디에 문제가 있었는가를 분석해서 보여줘야 한다.
오태규: 축구에 관심 있는 사람의 한 사람으로서 미디어가 올림픽에 나가지 못했다, 나갔다에 집착해서 보도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본다. 브라질도 떨어질 수 있는 게 축구다. 대한민국만의 올림픽 고정석은 아니잖은가. 이번에 경기를 보면서 한국 축구의 질, 그러니까 한국 축구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느냐는 실망감이 있었다. 그렇다면 미디어는 그것들을 자세하게, 어디에 문제가 있었는가를 분석해서 보여줘야 한다. 과학적이고 심층적인 분석을 한 뒤, 실패를 어떻게 극복하고 더 좋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을까 하는 방식으로 보도가 이뤄지면 좋겠다. 그저 자존심이 상했다거나, 축구팀에 들어간 사람들이 다 엉터리인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앞으로의 한국 축구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고 본다.
장익영: 축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기 때문에 결국 부진한 성적이 발단이 돼, 지도자 문제로, 다시 협회의 행정 문제까지 파급됐다. 저는 좀 다른 차원에서 보고 싶은데, 1990년대 전후로 신자유주의나 작은 정부, 민영화, 효율 등이 많이 부각됐다. 이른바 신 공공관리론인데, 이런 것들이 협회 행정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신 공공관리가 관료적 문화의 경직성을 깨는 효과가 있지만 효율성이나 시장 원리가 이론대로 되는 것은 아니고, 더욱이 조직 평가가 객관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회자: 매우 참신한 시각이다. 사실 협회 내부 분위기가 상당히 다운돼 있는 게 사실이다.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가 사라졌다. 회장의 리더십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는데, 세부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분명히 과거의 활력과 비교할 때 조직, 인사 관리 등에서 위축돼 있다.
예전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유지했던 남자 농구나 여자 배구는 어느 순간 아시아권에서도 경쟁력을 잃었다. 그나마 축구가 버텼는데, 이유가 있다. 축구에는 우수한 자원들이 많이 확보됐고, 시장이나 산업이 크다.
위원석: 저는 좀 다른 측면을 지적하고 싶다. 이번 올림픽에는 한국 구기 가운데 여자 핸드볼만이 유일하게 참가하는데,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유지했던 남자 농구나 여자 배구는 아시아권에서도 경쟁력을 잃었다.
그나마 축구가 버텼는데, 거기엔 이유가 있다. 축구에는 그래도 우수한 자원들이 많이 확보됐고, 시장이나 산업이 크다. 얼마 전에 한국일보의 스포츠 시리즈 기사 가운데 체육계에 큰 자극을 줬던 주제가 저출생 문제다. 지금 학원 농구, 배구 종목에서는 선수를 확보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축구는 다른 종목보다 유소년 육성 체계가 잘 돼 있는 편이다. 앞으로 다가올 위기에 대비하고 준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사회자: 내부의 주체적 조건과 외부의 객관적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인구 절벽 등 출생률 감소에 따른 선수 충원의 어려움은, 학교에서의 일인 일기나 생활 스포츠 저변의 확대와 같은 체육 현장에서의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다양한 얘기를 할 수 있는데, 일단 올림픽 대표팀에 집중해서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싶다. 과연 황선홍 감독이 그렇게 잘못한 것인가? 차기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국내파 감독들은 아예 제외된 것 같은데 그게 맞는가?
황선홍 감독이 A대표팀 사령탑 후보에서 배제됐는데, 나는 황 감독이 축구협회장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 축구를 잘 아는 사람들이 행정뿐 아니라 축구 지도자로서도 중추에 서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오태규: 어떤 즉각적인 답을 떠나서, 한국의 국가대표를 했던 선수 중에서 이론과 실전이 뛰어난 사람이 A대표팀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은 2018년부터 국가대표 사령탑을 맡고 있는데, 나름대로 자기네 대표팀 육성 원칙을 보여준다. 해외의 것들을 습득하지만 기본적으로 자기네 중심으로 일본 축구의 색깔을 살려 나가기 위해 모리야스 감독을 장기적으로 신임하는 것으로 본다.
47살의 미야모토 쓰네야스가 축구협회장을 맡고 있고, 1972년생인 노노무라 요시카즈는 일본프로축구연맹 총재다. 선수 출신으로 자기네 축구의 성격을 잘 아는 사람들이 은퇴 뒤 협회 행정과 현장에서 활동하는 게 부럽다.
우리는 황선홍 감독이 A대표팀 후보에 배제됐는데, 나는 황 감독이 축구협회장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렸을 때부터 커서 한국 축구를 잘 아는 사람들이 행정뿐 아니라 축구 지도자로서도 중추에 서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과거 정몽준 회장 등이 피파 집행위원을 하면서 세계 축구의 중심에서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한 일도 많지만, 지금은 과거와 다른 체제가 필요하다.
사회자: 황 감독은 당장은 실패했지만, 한국 축구의 귀중한 자원이고 자산이다.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는다. 축구팬이나 협회에서도 그런 부분들을 좀 냉철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김완태: 한국에서는 종목 불문하고 무얼 해도 꼭 승리해야 하는 문화가 있다. 과거 프로농구단 단장을 할 때 보면 너무 승부 중심이었고,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름대로 '비온드 빅토리'(beyond victory)라는 슬로건을 만든 적도 있고, 수익성 제고라든지 팬 가치를 추구하는 쪽으로 팀을 운영했는데, 그러다 보니 결과도 나왔다. 꼭 인재가 어디서 나와야 한다기보다는,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미래에 대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 가령 행정을 맡을 후보든, 대표팀을 이끌 지도자든, 그런 사람들이 체계적으로 교육 지원을 받아서 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사회자: 준비가 잘 안 돼 있고, 닥치면 해내는 우리 사회나 문화적인 특징들을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미리 준비한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하는데, 그런 점을 새겨봐야 할 것 같다.
대표팀 감독 선임은 공정, 공평한 기회가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19살 대표팀에 뽑힌 이창원 감독은 대표팀 경력이 없다. 광주FC의 이정효 감독도 그런 측면에서 능력이 있다. 이름값도 중요하지만 전략적으로 뛰어난 분들에게도 기회가 가야 한다.
장익영: 오태규 위원께서 말씀한 인적 인프라 구축은 굉장히 중하다. 아마 우리 체육계의 가장 큰 고민일 것이다. 여태까지 한국 스포츠에서 체육인이 리더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경제인이나 정치인들에게 맡긴 측면이 있다. 국가의 정책이나 스포츠 외교 등이 얽힌 매우 복잡한 구조여서, 또 북한과 대립하는 상황에서 그쪽에서 자원이 공급된 셈이다. 지금은 스포츠 외교를 위해서 체육인들을 육성하려고 노력하고, 한때 축구협회도 조중연 회장이 맡은 적이 있다. 대외 교섭력은 떨어졌을지 몰라도 축구 내적으로 평가받을 부분이 있다(당시 각급 대표팀의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
대표팀 감독에 대해서는 공정, 공평한 기회가 돌아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이번에 19살 대표팀 사령탑에 이창원 감독이 됐다. A대표팀 경력이 없지만 좋은 성과를 내고, 전략적으로 뛰어나다. 광주FC의 이정효 감독도 그런 측면에서 능력이 있다. 이름값도 중요하지만 전략적으로 뛰어난 분들에게도 기회가 가야 한다.
사회자: 한정된 자원을 탓하기보다는 보유한 자원 가운데 최적의 인물을 찾는 것도 방편인 것 같다. 물론 인적자원 축적을 위한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고, 감독 선임에 있어서는 능력 위주로 공정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