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내에서
황융하
어쩌면 뷔페는 자기 작품을 도륙 내려 하지 않았을까, 이런 허튼 생각마저 스친다. 곳곳에 스크래치(자가용의 '문콕'보다 더 깊고 살벌하다)가 난발한다. 분사된 화살촉이 스치고 지나가듯 어디는 예리하게 어디는 묵직한 흉터를 박아버렸다. 전쟁의 파괴가 자행하는 무질서, 그러나 뷔페의 그림에는 질서가 도사리고 있다. 삶의 터가 무너진 폐허에서 바둥거리는 생존, 이 자체가 질서이다. 마치 카오스처럼.
현대인들은 전쟁이 가져올 폐허와 죽음의 두려움보다, 연일 찌들어 살아가는 일상의 하루하루를 더 무거워한다. 그렇다면 베르나르 뷔페의 스크래치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얼굴에는 어떤 상흔으로 그려지게 될까.
전쟁은 그의 작품을 어둡고 무거운 톤으로 짓눌렀으며, 인물의 표현과 색채의 사용에서 두드러진다. '광대' 시리즈는 전쟁 후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사회적 혼란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며, 이러한 작품들은 당시 사람들의 감정과 경험을 대변한다. 전쟁은 인류에게 해악일 수밖에 없다는 분명한 명제와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가? 지친 삶에도 열렬하게 살아간다."
그의 말년은 파킨슨병으로 고통의 나날이었다고 한다. 전시실에서 그의 영상을 보노라면, 붓질하는 손은 떨리고 기력이 붙지 않는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이 시기 그는 25점의 죽음 시리즈를 제작했으며, 특히 전신 해골 그림이 많다. 죽음에 대한 담대한 시선이자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진실을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