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책 표지
우리교육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중략)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는 백석의 시를 읽으며 힘든 계절을 견뎌낸 시인의 한 때를 생각한다. 그와 같은 글을 읽으며 간신히 버텨냈던 나의 어느 계절 또한 떠올린다.
기행문이기도, 시해설집이기도 한 신경림의 산문은 그렇게 독자를 시간과 공간을 건너 시의 힘이 작용하는 세계로 이끌어간다.
그의 손을 잡고 시 세계로 들어선 일이 있었다
물론 모든 점에서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 책을 접했을 적엔 어딘지 못마땅한 감상이 든 것도 사실이다. 살았을 적 품은 뜻과 담긴 글이 있으면 그만이지 이미 죽은 시인들 생가를 찾아 무엇 하느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책 사이사이 시인의 생가를 묻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우스꽝스럽고 한심하다는 듯 묘사하는 대목을 읽고 난 뒤였다.
그러나 그 모두는 이 책이 품은 미덕에 비한다면 채 한 줌도 되지 않는 아쉬움이 아닌가. 교과서를 통해서 밖에 접하지 못했던 죽어버린 시인들을 역시 교과서를 통해 접하였던 살아있는 시인이 일일이 찾아 대면하는 모습은 결코 흔치 않은 일이다. 그로부터 오로지 문제를 맞히기 위하여 이해했다 믿어야 했던 시와 시인들을 나는 새로이 만날 수 있었다.
개중 마음 깊이 들어온 시가 있다. 개중 마음 밖으로 밀려난 시인도 있다. 신석정 시인의 '산산산(山山山)'과 신동문 시인의 '내 勞動으로'는 때로 때때로 꺼내어 읽는 시가 되었다. 신경림의 작업이, 이 책이 아니었다면 결코 없었을 일이다. 나는 그에게 빚지고 있는 것이다.
1000편의 시를 외운다던 시인 신경림이다. 일천 편의 시를, 어쩌면 그보다 많은 시를 수없이 읽어낸 결과로써 그는 한 편의 시란 작품을 넘어 시인의 삶과 사상, 그가 산 배경까지를 이해한 뒤에야 제대로 읽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얻었다. 시와 시인을 오로지 교과서로 접할 뿐인 불운한 대중들을 향하여서 신경림은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를 맞잡는다면 당신은 이제껏 만나지 못한 길을 통하여 한국 시 세계로 접어들게 될 테다.
시인 신경림 선생이 오늘 오전 8시17분께 별세했다는 소식이다. 이 조잡한 글은 내게 손을 내민 이 시인에 대한 나름의 애도다. 고인이 평안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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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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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인도자, '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시인을 애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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