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7시 30분 경기도 부천시의 한 장례식장에서 고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의 발인이 치러졌다. 김 위원장은 지난 19일 사망했다.
김성욱
하지만 거리에서의 싸움이 길어질수록 그는 홀로 남겨지길 반복했다. 특히 삼성은 합의와 압박을 동원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방법으로 무노조를 지켜왔다. 그는 민주노총 등 노동운동 중심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의 오랜 바람처럼, 지난 2020년 5월 국정농단 뇌물죄 등으로 구속 위기에 처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경영권 승계·노조 탄압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무노조 경영을 철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여전히 '삼성 노조 시대'는 시작 단계에 있다.
22일 오전 경기도 부천의 한 장례식장에서 김 위원장의 발인이 치러졌다. 가족들과 주변을 포함한 10여명이 운구 행렬의 끝이었다. 그의 싸움처럼 마지막길에 함께 하는 이들도 조촐했다.
김 위원장의 상여가 버스에 실려 장지로 향하는 동안 부인 임경옥씨와 통화했다. 임씨는 김 위원장의 싸움에 함께 한 동지이기도 했다.
- 심정이 어떤가.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 살다 죽는다. 모두 한번 겪는 일이라 그렇게 대단하진 않지만, 요즘은 장수하는 세상이라 60대 중반에 병을 앓다 돌아가셨다는 게 안타깝다. 특히 최근 보름 정도는 정말 고통스러워 했다. 뇌경색으로 2년을 굉장히 고생하다 마지막 서너달 동안엔 간암이 발병해 급격히 퍼졌다. 곁에서 끝간 데 없는 고통을 지켜보는 게 마음 아팠다. 한편으로는, 갑작스런 죽음을 맞게 하지 않고 가족들이 어느 정도 마음의 정리를 하고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준 것 같아 고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고인이 삼성과 30년 가까이 싸웠다.
"한눈 팔지 않았다. 20대 때 노동 운동하겠다며 세운 뜻 그대로 다른 일에 눈 돌리지 않고, 진실된 마음을 지키며 살아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굉장히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정이 있었고 자식도 셋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물론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올곧게 자신의 한 생을 살았다. 그래서, 제 남편이지만, 참 드문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는 공적인 모습과 사적인 모습이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
- 삼성이라는 대기업과 싸우는 길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힘들지 않은 싸움이 어디 있겠나. 나름대로는 다 힘들다. 그렇지만 다른 재벌과 달리 삼성이라는 괴물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특별한 힘은 있었다. 삼성이 법망을 빠져나가기 위해 뭔가를 고안하면, 그걸 사법부에서 받아 안고, 그럼 다른 재벌들이 따라 한다. 그리고 이런 패턴들이 그 아래 중소기업이나 전 사회에 파장을 미친다. 노조 탄압이 단적인 예다. 그 거대한 힘에, 김성환이라는 한 개인이 맞선 거라고 저는 생각한다. 오죽하면 <골리앗 삼성재벌에 맞선 다윗의 투쟁>이라는 책을 냈겠나.
그런데 사실 남편을 심적으로 더 힘들게 한 건 '골리앗'이 아니라 노동운동 내부였던 것 같다. 상처의 틈바구니 속에서 외로운 투쟁을 해야 했다. 그래도 '삼성 노조'로 가는 길에 씨앗은 뿌렸다고 본다. 미미하지만, 변화의 첫걸음이 지금 있고, 그게 쌓이면 우리가 못했던 일들이 이뤄질 것이다. 뒷세대들에게 희망을 갖는다."
- 이번 장례 때 삼성 쪽에서 연락이 왔나.
"전혀 없었다."
- 30년간 싸우는 동안 생계는 어떻게 했나.
"김 위원장은 1996년에 부당하게 해고된 후 한번도 돈벌이를 해본 적이 없다. 그때 우리 막내가 세살이었다. 내가 우유 배달도 하고, 김밥집에서 야간에 일도 하고. 건강식품 판매도 하고, 책도 팔고, 정수기도 팔고. 주로 그런 일을 많이 했다. 어린 애들을 봐야 했기 때문에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일은 할 수 없었다. 닥치는 대로 했다. 빚도 많이 냈고 월세도 많이 전전했다.
그런데 어쨌든 세월이 갔다. 애들이 모두 스무살이 넘었다. 산이 높으면 아득해 보이는데, 열심히 걸어가면 언젠가 정상이 나오고, 그럼 또 내리막길이 나오더라. 돌아보니 그렇더라. 그 상황 속에 있으면 너무 힘들고, 그래서 막 죽을 것 같이 힘든 시기도 있었는데, 그걸 견디고 시간을 보내면, 또 다음이 있었다. 결국은 지나가더라. 그래서 이렇게 나이를 먹었다."
- 김 위원장에게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나.
"아… 음… 김성환씨... 마지막에 참 힘들었지만, 그래도, 하고자 하는 일... 곁눈질 안 하고, 끝까지 그렇게 올곧게, 쭉 이어간 것에 대해서,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당신은 참, 세상에 드문 사람입니다. 잘…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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