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바래봉 가는 길에
청명 페이스북
냉장고와 세탁기 없는 삶, 계절별로 내복과 옷 두 벌로 살기, 드라이기 없는 삶, 가벼운 옷들은 손빨래하기, 음식물로 퇴비 만들기, 생활쓰레기 줄이기, 과일망 재활용하기, 통과 텀블러 가지고 다니기, 가급적 불 켜지 않기. 섞어짓기 농법으로 농사짓고 자족적인 삶을 확대해나가기 등 청명은 매일 자신의 일상 속에서 했던 '비움실천'을 300명에게 80일간 보냈다. 단체 메시지로 보내면 스팸 메시지처럼 생각할까 봐, 한 명 한 명에게 메시지를 보내면 3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300명 중에서 일부는 저에게 '이것저것 해봤다'라고 연락을 주었어요. 그럼 저는 답을 준 사람들의 비움실천 사례를 편집해서 다시 300명에게 보냈어요, '이렇게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분들이 있다'라면서. 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주변으로 확장되는 실천과 변화를 공유했죠. 그분들은 '자신들이 실천하는 게 생각보다 중요하구나'를 느끼면서 함께 비움실천을 생활화할 수 있었던 거죠.
'소박한 자유인'이라는 이름으로 보낸 메시지에 사람들이 반응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만난 사람들과 소규모의 비움실천모임을 가졌다. 그러한 작은 모임들이 탈핵신문읽기모임과 지역 곳곳의 소규모 순례단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청명은 두 가지를 내려놓으면서 비움실천을 시작하였다. 자본과 옷, 대표적으로 우리를 끊임없이 많이 사고, 많이 버리고, 많이 소유하며 많이 바라게 만드는 이 두 가지를 버리자 자급자족적 삶이 가능할 것 같았다.
삼척 성원기 선생님이 2013년부터 핵발전 백지화를 위해 탈핵순례를 시작했어요. 저는 2017년에 결합했고, 핵발전소 4개 지역과 서울까지 가는 순례에 참여했죠. 당시 일을 해서 일주일 중 4일만 참여했어요. 이 순례를 하면서 대표적으로 자본을 내려놨어요. 한 달에 얼마를 벌면 될까, 저의 시스템을 먼저 점검했죠. 다음에는 옷장을 봤는데, 불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았어요. 사실 노동운동하고 직접 공장에서 일하면서 싸고 대량으로 공급되는 상품(옷)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는지를 너무 잘 알았거든요. 순례하면서 처음에는 옷 2벌로 계절을 보냈고, 계절별로도 옷 2벌로 살기 시작했죠.
이렇게 비움실천을 하고 80일간 사람들에게 나누던 청명은 직접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비움길'을 만들었다.
일종의 순례죠. 근데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걸어가는 것을 뜻해요. 최소 10km 걸으며 오늘 만날 사람을 생각했어요. 비움길을 통해 홍세화 선생님을 만나기도 했는데, 처음에 "공부가 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공부는 평생 해야 하는데, 나를 잘 짓기 위한 길이다"라고 말해줬어요. 나를 잘 짓기 위한 공부란, 나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내 생각과 감각, 내가 가진 관점과 기준은 도대체 어디서 왔는가'. 그렇게 청명은 공부하고 실천하며 걷는 자신만의 '비움실천'을 만들어갔다.
청명은 언어치료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점점 그 비중을 줄여나가고 있다. 그는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보통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돈을 주고 상품을 사서 선물로 주잖아요. 그런데 저는 제가 수확한 작물을 줘요.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돈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시스템에서 점점 더 저를 자유롭게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소박하고 자유롭게 사는 것을 선택한 거죠. '으레 우리가 해왔던 것들이 진정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꼭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 거죠.
이러한 질문을 통해 그의 삶이 자유로워지고, 소박해졌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겠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욕망과 본능 그리고 미덕이라고 부르던 것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성찰했다. 남들만큼 많은 것들을 가지려는 것을 버리고, 진짜 내가 바라고 원하는 삶을 고민했다. 그는 더 많은 사람을 만나 유연하게 이야기하고 다가가며 자신과 다른 삶과 목소리들을 제 안에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편리하지만 우리를 쉽게 중독되고 복종하게 만드는 이 시스템에서 어떻게 조금이라도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이게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나를 '나'처럼, '우리'답게 살지 못하게 만들고 사유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 시스템을 함께 이야기하고 공부하며 다른 삶을 고민해보자는 거죠. 그래서 저는 순례하고, 탈핵신문도 배달하고 점심시간에 짧게 브리핑을 원하면 가서 기사도 읽어줘요. 길을 걷다 사람에게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인사하고 이야기 나누는 등 하루에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많은 거죠.
청명이 탈핵순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사회의 현주소를 읽을 수 있는 온도계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순례하며 만나는 사람들의 눈빛, 관심, 한 마디, 표정을 보면 그들도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나 핵발전 이슈를 알고 있어요. 핵발전 전문가나 언론이 말하는 것이 아닌 이 시대, 우리의 현주소를 사람들을 통해 읽을 수 있어요. '시민들이 지금 이 정도까지 고민하고 있구나'라는 걸요. 순례를 통해 이 시대의 온도를 느낄 수 있는 거죠.
청명은 순례 전 항상 본인이 쓴 기도문을 읽는다. 원래 제목은 '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사랑이 되는 길'로 바꾸었다. 그가 길 위에서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무가 되고 숲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쓰고 읽는 기도문을 공유하며 이 글을 마친다.
사람이 그리운 세상, 여기 사람 하나 그리움 달빛에 걸어놓고 사람이 길을 간다.
함께 가야 할 길 그 길 위에 사람들 하나 둘.
희망은 씨앗이 되고 새싹이 되고 나무로 자란다.
나무가 또 나무가 되어 숲이 되리, 그 숲에서 생명을 노래하리.
여기 사람 하나 그리움 달빛에 걸어놓고 사람이 사랑이 되는 길. 오늘도 사람 하나 길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