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삐용
호랑이꿈
도망자 곰, 그의 죄목은?
<펭귄의 모험>은 고향으로 돌아간 펭귄의 '귀거래사'* 같은 낭만적인 내용이지만, <빠삐용>은 다르다. 210*280mm의 그림책은 사냥꾼과 사냥개가 노란 불빛을 비추며 산을 오르고 있고, 그 아래 바위틈에 곰으로 보이는 두 눈이 있다.
예전 끊임없이 도망치고, 또 도망치던 스티브 매퀸 주연의 추억의 영화 <빠삐용>에 딱 어울리는 장면이다. 도망의 끝에 빠삐용이 '인생을 낭비한 죄'라는 죄명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지만, 저 곰은 도대체 무슨 죄명으로 저리 쫓겨야 하는 것일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라며 뭉게뭉게 몰려오는 먹구름으로부터 시작된 그림책은 호우주의보를 알리는 뉴스 속보와 번개를 맞아 문이 떨어져 나간 곰 사육 농장으로 시작된다. '강렬한 색감과 역동적인 선, 속도감이 느껴지는 구도'라고 출판사는 이 그림책의 그림을 소개하는데, 스텐실과 콜라주를 더한 그림책의 삽화는 거친 폭우 속에 도망자가 된 곰의 이야기를 실감 나게 전한다.
곰 사육 농장에서 곰 두 마리가 탈출했고, 경찰은 포수와 수색견을 동원에 달아난 곰을 쫓는다는 아나운서의 멘트는 한 마리의 곰이 사살되고 다른 한 마리를 잡지 못해 추적이 계속되는 상황에 맞춰 급박하게 진행된다. 우리가 '방송'이라는 매체를 통해 익숙해진 긴장감이다. 재난 문자를 발송하고 외출을 자제하라고 당부하는 그 위기 상황은 마치 그 반달곰 한 마리가 '킹콩'이라도 되는 듯 불안감을 조장한다.
그런데, 이 급박한 상황 속에 잡히지 않는다는 곰은 어떨까? '빠삐용'이라는 속표지를 넘겨 쏟아지는 비 속에 방치된 곰, 벼랑에서 사냥개에 쫓기는 곰, 죽은 줄 알았는데 화물 열차 위에 오도카니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는 곰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작가의 말처럼 똑같은 곰인데 곰 사육 농장에서 탈출한 곰은 사살되어야 하고, 지리산에 애써 방사한 KM-53(곰의 관리번호, 복원사업으로 한국에서 53번째 태어난 곰이라는 뜻)은 왜 교통사고를 당해도 수술을 해서 다시 방사되어야 하는 것일까.
<펭귄의 모험>처럼 <빠삐용>도 판타지한 서사를 통해 곰에게 자유를 선사한다. 쫓기던 곰은 어느새 액션 블록버스터의 주인공처럼 벼랑에서 떨어져도 기적처럼 살아내고,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인간이 만든 문명의 이기들을 적절하게 활용해서 자유을 향해 떠난다. 우리가 만든 변덕스런 애증의 잣대는 그렇게 판타지를 통해 구원받는다.
*귀거래사: 도연명이 13년 간에 걸친 관리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드디어 향리로 돌아가서 이제부터 은자로서의 생활로 들어간다는 선언(宣言)의 의미를 가진 작품이다. 지금까지의 관리 생활은 마음이 형(形, 육체)의 역(役, 노예)으로 있었던 것을 반성하고, 전원에 마음을 돌리고, 자연과 일체가 되는 생활 속에서만이 진정한 인생의 기쁨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빠삐용
김선배 (지은이),
호랑이꿈, 2024
펭귄의 모험
김태린 (지은이),
뜨인돌어린이,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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