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재도 마을 초입 돌담길의 ‘커피 혜자네 주막’ 간판. 바로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TV 예능프로 ‘삼시세끼 어촌편’을 촬영했던 곳이 나온다.
이광표
짝지해수욕장은 모래가 아니라 자그마한 몽돌이 깔려 있다. 물은 맑고 해안선은 부드럽게 휘어져 있다. 해안선 끝자락에 크고 작은 바위들이 즐비하고 장바위산으로 이어진다. 짝지해수욕장 뒤편엔 '만재도' 표석이 있고 좁은 돌담길이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가옥 벽체는 돌담에 감춰져 있고 파란 지붕만 보인다.
이곳은 골목골목이 모두 돌담이다. 채소밭까지 돌담으로 둘러쳐져 있다.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서다.
멀고도 작은 섬이지만 이곳 돌담 풍경은 왠지 익숙한 듯하다. TV 예능프로 '삼시세끼 어촌편'을 촬영한 곳이기 때문일까. 돌담길 초입엔 '화평이네 민박', '커피 혜자네 주막', '만재도 슈퍼' 같은 간판이 보인다. 혜자네 주막 골목으로 들어가면 첫 번째 집이 삼시세끼를 촬영했던 곳이다. 커피주막과 슈퍼는 성수기 때만 간혹 문을 연다. 혜자네 주막에서 커피를 마시지 못해 좀 아쉬웠으나 햇볕 좋은 4월 초 오후, 바닷가 좁은 돌담길을 걷는 건 매력적인 경험이었다.
화려했던 가라지의 추억
섬 이름 만재도(晩財島)는 "해가 지고 나면 고기가 많이 잡힌다" "재물을 가득 실은 섬"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이름에 걸맞게 1930~1960년대엔 돈섬, 보물섬으로 불리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당시 만재도 근해에서는 가라지가 많이 잡혀 '가라지 파시'가 성행했다. 전갱잇과의 가라지는 고등어보다 크고 맛이 좋아 고급 어종으로 꼽혔다. 소금으로 간을 해 말린 뒤 구워 먹으면 특히 일품이었다고 한다. 가라지는 가거도나 상태도에서는 보이지 않고 유독 만재도 인근에서만 잡혔다. 한창일 때엔 가라지를 잡는 어선, 가라지를 구입하려는 상선 200여 척이 몰려 만재도 앞바다를 가득 채웠다.
그러자 흑산도, 가거도, 맹골도, 상태도 등지에서 상인들이 들어와 해변에 천막을 치고 술집을 차렸다. 작은 섬에 그런 술집이 10여 곳을 넘었다고 한다. 만재도 펜션 운영자는 "그 시절 가라지 생선 두세 마리만 들고 가게에 가면 이것저것 여러 생필품으로 바꿔올 수 있었다"고 했다. 가라지가 얼마나 비싼 값에 팔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가라지가 급격히 사라졌고 외지 어부들도 만재도를 떠났다. 이후 1970년대부터 주민들의 생업은 해조류 채취와 소규모 고기잡이로 바뀌었다. 여름에는 미역 전복 홍합 해삼 등을 채취하고 봄 가을에는 주낙이나 낚시로 우럭 농어 장어 등을 잡는다. 여름이 되면 선착장이나 해수욕장에서 돌미역, 홍합 등을 손질하는 주민들을 자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