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신활력 플러스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던 ‘보령 치유 여행’ 마지막 날, 가마솥으로 지은 밥과 직접 만든 손두부로 아침밥을 거하게 대접받고 행복으로 배부른 상태에서 찍은 단체 사진이다.(여행 주관사 <헤이보령>)
메타비
최근 책에 실을 결혼에세이를 쓰면서 느끼는 감정이 문제였다. 지난 날 남편과 싸움이 일어날 때마다 문제가 되는 나의 불안, 감정을 무조건 참아내는 버릇, 돈에 대한 이상한 자존심, 사랑을 갈구하는 가슴 속 허한 마음들이 어쩌면 어렸을 적 아빠의 사업 실패로 매일 기도를 다니던 엄마의 부재에서 비롯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 그래서인지 엄마를 괜스레 미워하는 마음이 비집고 들어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 좋고 산 좋은 보령에 간다 한들, 엄마를 만나는 순간부터 헤어지는 순간까지 모든 것이 불편할 것만 같았다.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할 잔소리에 요즘들어 유독 커진 나의 섭섭함과 미움이 잘못 만나 쌓일 오해들이 눈에 선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나이 먹고 누구에게 맞추는 여행을 하기도 싫었다. 결국 엄마와의 여행은 마음 속에서 다음으로 스윽 미뤄둔 채, 중학생 큰딸에게 같이 여행을 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나에게도 딸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고맙게도 큰딸은 흔쾌히 나를 따라나섰다.
엄마와 딸의 치유 여행이란 콘셉트에 맞게 스케줄 사이사이 모녀만의 시간이 자주 주어졌다. 로컬푸드로 피자를 만들면 엄마가 만든 건 딸이 먹고 딸이 만든 건 엄마가 먹었고,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장관을 이루는 신경섭 고택을 방문했을 땐 나중에 액자로 만들어 보내준다며 엄마와 딸 둘만의 기념사진을 작가가 찍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영화 <결백> 촬영지로 저수지 뷰가 정말 아름다운 카페에 갔을 땐 엄마와 딸이 서로에게 듣고 싶은 말을 적는 시간도 마련되었다.
나는 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는 칸에 "엄마와의 여행에 동행해줘서 고마워"라고 적었다. 진심이었다. 중학생이라 이젠 엄마랑 여행 같은 거 안 다닐 줄 알았는데 흔쾌히 따라나서준 딸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래쪽을 보니 이번엔 딸에게 엄마가 듣고 싶은 말을 적는 칸이 있었다.
나는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오늘도 집에서 혼자 적적히 계실 엄마가 떠올랐다. 그제서야 알았다. 엄마도 여행을 왔다면 그저 나와 같은 생각이었겠구나, 오십이 다 된 딸이 함께 여행와줘서 참 고마운 마음뿐이었겠구나.
나는 여행을 떠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딸에게 제일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엄마가 나에게 제일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지. 나는 펜으로 꼭꼭 눌러가며 빈칸을 채웠다.
"엄마, 나랑 같이 여행갈래?"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세상에 호기심 많은, 책 만드는 편집자입니다. 소심한 편집자로 평생 사는가 싶었는데, 탁구를 사랑해 탁구 선수와 결혼했다가 탁구로 세상을 새로 배우는 중입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