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박진영은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통해 과학과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민음사
<재난에 맞서는 과학>(민음사, 2023)을 반갑게 읽었다. 저자 박진영은 자신을 환경사회학 연구자로 소개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지식 정치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책은 이 논문을 대중서로 다시 작업해서 출간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교훈을 되짚고, 본질적인 질문을 통해 다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문제(쟁점)를 거론하고 있다.
나는 가습기살균제 피해가족이다. 2010년과 2011년 사이 가습기살균제 사용에 노출되어 피해를 입었다. 가족 모두가 노출 피해자이고, 노출 정도와 개인의 민감성에 따라 인체 건강피해를 입었다. 그 정도에 따라 우리 가족 셋은 각자 다른 피해 판정을 받았다. 우선 딸이 즉각 피해 판정을 받은 경우였다.
나와 아내는 이 문제가 공론화되고 피해 판정 절차가 한창 진행된 이후, 나중에 피해 접수를 하고 추가 판정을 받았다. 현재 내 가족은 일상을 지내는 데 별 무리는 없다. 다만 가습기살균제 피해 유형이 워낙 다양하고, 인체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므로 '별일 없다'는 표현이 적절한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안전하다'고 믿고 사는 감각이 뒤흔들릴 때
2011년 당시 나는 딸을 치료하는 데 최우선을 두었다. 급한 불을 끄는 것이 우선이었어서다. 부모는 당장 눈에 띄는 건강 피해 영향은 없었다. 동시에 가족이 집안에서 사용한 가습기살균제였으므로 가족 모두가 노출되었던 상황이라, 정확히 규명되진 않았어도 알 수 없는 피해가 몸 안에서 일어났을 것이라는 것은 상식적이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평소 우리는 무수한 위험인자에 노출되어 살고 있다. 다만 그것이 건강 피해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회적 기준선(안전기준치, 가이드라인)을 갖고, 그 기준치 이내는 안전하다는 그것(과학)을 믿고 살아가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노출도 시작부터 이러한 문제와 접근법을 안고 출발했다. 물론 가습기살균제는 이런 기준치가 없었기에 문제가 된 것이고, 그 이후 줄곧 문제가 되었다.
나는 2011년 8월 31일 이 문제가 우리 사회에 알려져 충격을 준 이후 그해 9월부터 피해 모임(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이하 가피모) 대표를 맡아 2017년까지 활동했다. 그 당시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피해구제 등 대책활동을 했다. 그 기간 동안 여러 사건들이 진행되었고, 시간이 그만큼 흘렀고, 여러 경험들이 쌓였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2018년부터 약 3년 반 정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에서 근무하면서,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된 일을 했다.
2011년부터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된 활동을 해 오면서 늘 풀리지 않는 숙제와 같은 문제가 있었다. 즉, 한 번은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인과관계' 싸움이었다. 피해자들은 확실성과 불확실성의 기준, 즉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현실' 앞에서 매번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다.
누구는 피해 구제 대상 피해자가 되어 뒤늦게라도 정부 피해구제와 기업의 개별 배상을 받을 수 있었지만, 불확실성과 같은 과학적 입증(검증)이 모호한 경우에 해당되는 피해자들은 피해 구제에서 배제되어 지난하고 힘겨운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입증' 어려운 문제임에도... 현재 진행형인 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