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희생자 1주기 추모문화제 공간에 마련된 분향소
참여연대
2020년 다세대주택을 전세로 얻었습니다. 입주하고 한 달 후쯤 우연히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니 임대인이 전혀 모르는 주식회사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빌라 수백 채를 가진 임대사업자였습니다. 저의 전세계약 직후 전세가와 같은 금액에 해당 다세대주택을 매매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무자본 갭투기였습니다.
부랴부랴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보험에 가입을 알아봤지만 이 주식회사가 블랙리스트에 올라온 악성 임대인이라 가입이 어렵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심지어 얼마 후 다시 떼어본 등기부등본은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근저당이 새롭게 잡혀있었습니다. 채권자는 은행도 아닌 다른 주식회사였습니다.
새 임대인이 된 주식회사는 제가 살고 있는 주택을 포함하여 총 다섯 채에 근저당이 잡혀있었습니다. 이 또한 근저당 채권자가 임의경매를 신청하면서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 집에 살고 있는 것은 저인데, 막상 집과 관련한 중요한 사실은 알 수 없었습니다. 우연한 계기가 아니고서는 무언가 큰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강박적으로 등기부등본을 떼어보게 되었습니다. 매번 피가 마르는 심정이었습니다.
해결은 더욱 어려웠습니다. 근저당에 묶인 다른 세입자들을 찾아다니고 인터넷이나 법률 상담을 통해 대응 방법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전문가라는 사람은 "머리에 총 맞은 게 아니라면 그런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라며 저를 질책했습니다. 주식회사 측과 연락이 닿았을 때도 비난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해당 집의 주인으로서 근저당을 잡아놓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며 큰 소리를 쳤습니다. 근저당과 '억' 소리나는 세금 체납으로 집을 압류상태로 만들어놓고 난 모르겠다, 알아서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주식회사는 합법적으로 투기를 한 것이고 그 투기를 미리 알아채지 못한 세입자가 잘못이라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하면 이를 알 수 있었을까요? 계약했던 임대인이 다른 사람에게 집을 팔았다는 것도, 새 임대인이 체납한 세금이 어느 정도인지도, 근저당 채권에 대해서도 세입자가 미리 알 수 없거나 접근하기 어려운 정보들 뿐입니다. 세입자들은 집을 구하려면 최소한 '관심법'이라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까?
까딱하다가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큰 자책감에 시달렸습니다. 모아둔 전 재산과 대출금으로 구한 집, 까딱하다가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약기간이 끝나는 날까지 매일이 지옥과도 같았습니다. 그렇게 간신히 2년이 지났습니다. 물론 이것으로 전세사기 피해가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세반환청구 소송에는 6개월이 걸렸고, 강제경매 절차는 1년 넘게 이어지고 있어 여전히 사건은 진행 중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TV에서 익숙한 풍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의 임대인을 대리한다던 한 컨설팅 부동산의 사무실이었습니다. 공인중개사 신아무개씨의 얼굴과 목소리가 어제 만난듯이 생생했습니다. 뉴스에 나오기를 그는 여러 악성 임대인을 배후에서 조종한 전세사기 공범이었습니다. 임대인은 이미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었고 재판을 진행하며 신아무개씨와 서로 잘못을 떠넘기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세입자들은 또 뒤늦게 알게 된 것입니다. 저를 포함하여 그 임대인에게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이들 중 경찰, 검찰에게 연락을 받았던 경우는 딱 한 명에 불과했습니다. 또, 한 번은 집 현관문에 이상한 종이가 붙어있던 적도 있습니다. 주택 관리를 인수인계 받은 새로운 법인이라며 본인들한테 연락해서 점유 사실 등을 알리지 않으면 현관 도어락을 따고 들어오겠다는 협박성 쪽지였습니다.
이외에도 저는 여전히 전세사기 피해자로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은행은 전세담보 대출을 연장해주지 않아 높은 신용대출 이자를 다달이 내고 있으며, 전세보증금으로 인한 빚도 갚아나가고 있습니다. 재판으로 수백만 원의 변호사, 법무사 비용을 부담해야 합니다.
'전세사기'라는 말도 생기고 전세사기 특별법도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저는 법적 보호장치 없이 홀로 맞서고 있는 기분입니다. 당장 집에서 쫓겨나지 않는다고 해도 피해자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전세사기는 명백한 정부 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