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융건릉 서측방향 상공 항공촬영 ⓒ화성시청
화성시민신문
영화 <파묘>가 관객수 천만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도 <관상>이나 <명당>처럼 비과학적이라 여겨지면서도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개념들을 활용한 영화들이 나왔었지만, 천만영화를 바라보는 흥행을 기록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화성문화원에서 근무하며 화성의 가정신앙과 관련된 강좌를 개설한 적이 있다. 강의를 들으러 오신 많은 시민들과 소통하다 보니 다양한 궁금증을 가지고 계셨다. 가장 대표적인 이야기는 이사 전 새집 부엌에 밥솥을 먼저 가져다 놓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옛 풍속에서 부엌의 불을 꺼뜨리지 않고 새집에 가져가던 것이 변형된 것일 수 있다는 의견을 나누고 나니 부엌에 정한수를 떠 놓는 분, 차를 사면 막거리를 바퀴에 부어 고사를 지내는 분 등 생각보다 전통적인 민속문화가 현대인들에게도 크게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화성문화원에서 화성지역의 민속문화와 설화에 대해 고민했던 탓인지 영화 <파묘>를 보며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었다. 영화에서 풍수사로 분한 최민식씨의 대사 중 "지금은 65점짜리만 되도 명당이고 더 좋은 명당은 옛날 고관대작들이 벌서 다 차지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다. 그 고관대작들이 차지한 명당중 왕이 기운을 받은 최고의 명당이 화성시에 있다. 다들 아시겠지만 정조대왕의 효심으로 정성을 들여 자리 잡은 융릉이 바로 그곳이다.
전해지는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정조가 아버지의 능을 조성하기 위하여 지관과 같이 지세를 살피고 있는데 과천쯤을 지날 때 산꼭대기에서 묘를 쓰려하는 총각이 있었다. 정조와 정조의 지관이 묫자리를 살펴보니 조금만 높은 위치에 묘를 쓰면 좋은 풍수인데 낮은 곳에 쓰는 것이 이상하여 물어봤다고 한다.
그 총각이 말하길 자신은 머슴살이를하며 홀어머니를 모시기에 돈이 없어 동네 사람들의 지원으로 겨우 산소를 쓰는데 위치를 옮기기 위해 더 돈을 쓸 수가 없다고 했다. 정조가 마음이 좋지 않아 쌀 열가마와 베 스무필을 하사하여 위치를 옮기도록 도와준 뒤에 혼내줄 요량으로 이 자리를 점지해 준 지관을 불렀다. 그 지관에게 왜 좋지 않은 자리를 잡았는지 물었더니 그 지관의 이야기가 명답이었다. 이 자리는 사시(巳時) 하관에 오시(午時) 발복하는 자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하관을 하자마자 정조의 눈에 띄어 쌀과 베를 얻었으니 그 말이 틀린 것이 아니었다. 이에 정조가 당대의 명 지관이었던 박상의와 숨겨진 명지관 홍씨가 함께 찾고 찾은 명당이 바로 융릉의 터였다는 것이다.
화성, 접근 방식 달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