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SGI 측이 은행권에 보낸 공문 내용 일부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SGI의 전세대출은 대출 실행 전 임대인에게 '질권설정'을 진행합니다. 질권이란 한 마디로 돈을 받을 권리입니다. 이 질권은 등기부등본에도 기재되지 않고 보증서로서만 존재합니다. 질권이 설정되면 경매 배당 시 선순위 임차인보다도 먼저 배당을 받을 수 있게 되는데, 낙찰자가 확정되고 경매가 거의 종료되는 '배당기일' 직전까지도 배당요구(질권행사)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알기 어려웠습니다. SGI나 대출을 받은 은행에서 설명을 들은 적도 없습니다.
한 번 생각해봐주십시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서 피해주택이 경매에 넘어갔고, 도저히 보증금을 받을 방법이 없을 것 같아 최소한이라도 피해를 보전하고자 경매에 참여한 피해자의 입장을 말입니다. 이 피해자는 경락자금 대출 조건에 부합하지 않아 특례채무조정만이 유일한 선택지입니다.
남은 마지막 희망은 보증금과 낙찰 대금을 상계처리해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당장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이라도 확보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무이자로 조금씩 대출금을 갚아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행이 뒤늦게 배당요구를 하는 경우, 피해자의 보증금은 상계처리가 불가능해집니다. 경매가 이미 진행된 만큼 입찰보증금(낙찰가의 10%)도 돌려받을 수 없습니다. 이미 잃어버린 보증금을 어떻게든 구해와서 현금으로 일시납하지 않는 한 다시 해당주택의 경매에도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즉, 또 다시 대출을 받거나 집을 포기하거나입니다.
이런 문제가 제기된 것은 작년 11월 경이었습니다. SGI는 당시 전세사기 피해의 경우 당시 질권자인 은행이 질권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SGI가 은행이 가입한 보험금을 지급할 것이라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렇게 되면 앞서 말한 특례채무조정 제도를 이용하는 데에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경매 개시 후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은행에서 배당요구를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SGI는 공문을 통해 은행에 엄포를 놓은 것입니다. 은행이 배당요구를 하지 않아 피해자가 전액을 배당받으면 이는 은행의 책임이므로 은행의 책임 소재를 따져보아 지급했던 보험금을 재청구할 수 있다, 전세사기피해주택의 경우에도 예외없이 배당기일까지 배당요구를 하라는 경고였습니다. 이런 공문을 받은 은행 입장에서 어떻게 배당요구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심지어 이 공문은 은행에게만 배포된 비공개 자료여서 언론에 보도되기 전까지 피해자 누구도 저 내용을 알 수 없었습니다. 은행에 변제할 보험금 지급을 줄여보겠다는 악덕한 심보를 그대로 보여준 것입니다.
공문 한 장에 모든 게 무너졌습니다. 선순위이면서 다른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 피해자들에게는 특례채무조정 제도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는데 그것을 틀어막은 것입니다. 최저가로 낙찰 받으면 되는 거 아니냐, 다른 대출을 이용하면 되는 거 아니냐라는 말을 하는 분도 있었지만 그조차 어렵습니다. 공문 내용을 미리 알지도 못했을 뿐더러 얼마나 더 긴 세월을 경매에 매달리라는 것입니까? 또 고금리 대출을 더하라는 말입니까? 8회차, 10회차, 또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릴 것이고 유찰을 반복하며 올라가는 경매비용 역시 큰 부담입니다. 이미 긴 시간을 피말라가며 기다렸던 피해자들에게는 온전히 버텨내기 힘든 시간입니다.
그동안 많은 전세사기 피해자 분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선순위 임차인 분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SGI에게 묻고 싶습니다. 특례채무조정 하나만 바라보고 버텨온 사각지대 피해자들은 전세사기 피해자가 아닙니까? 선순위 임차인도 같은 피해자입니다. 더 이상 벼랑 끝으로 내몰지 마시기 바랍니다.
SGI는 전세사기 특별법 취지에 맞게 질권설정의 계약이라는 이유로 은행에 피해자에 대한 배당요구를 하도록 종용해서는 안 됩니다. 비공개 공문에 대한 입장을 철회하고 은행 역시 배당요구, 채권신고를 철회하여 피해자들이 낙찰대금으로 상계신청을 진행하고 채무조정이 가능하도록 적극 협조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이미 대다수 선순위 피해자들은 돌려받지 못한 사기꾼의 빚을 대신해서 갚고 있습니다. 오래 걸리더라도 투잡, 쓰리잡을 뛰며 갚아나가고 있습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로서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이것만이 피해자들을 조금이라도 돕고 살릴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부디 잊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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