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표지
후마니타스
겹겹의, 그를 둘러싼 울타리를 깨고 세상을 향해 느릿느릿 나아온 것이 형의 삶이었다. 그렇게 '평범하게 살고자 하는' 그는 '투모사'라는 별명-투쟁밖에 모르는 사람-을 얻게 되었다.
늘 투쟁의 전위에 서는 그를 함께 하는 활동가들도 무섭게 여겼다지만, 정작 그는 매 순간 갈등의 연속이었노라고 한다. 지하철 시위에 나갈 때면 차라리 활동지원사가 늦잠 자기를 바라기도 하고 '활동보조 서비스 제도화'를 외치며 한강대교를 기어갈 때는 너무 힘들어 경찰이 어서 와 잡아가기만을 바랐다고 한다. 약 30년 전 교회에서 같이 뒹굴던 규식이 형 모습이 떠올라 웃다가, 그럼에도 찢기도 밟혀도 투쟁을 이어가야 했던 그의 사정에 먹먹해지기를 거듭했다.
얼마나 두렵고, 얼마나 절박했을까. 그 두 마음을 품은 마음은 또 얼마나 외로웠을까. 형이 검정고시를 합격한 후에 그의 아버지는 '네가 여기까지 올 줄 몰랐다'고 털어놓았듯이, 그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 역시 그가 이렇게 '세상 속으로' '세상의 한 가운데로' 나서게 될 줄은 몰랐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장애를 다룬 유명한 영화 <나의 왼발>을 보면서 감동에 겨워할 줄은 알아도, 정작 우리 곁에서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자기 몸에 쇠사슬을 묶어야 했던 형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못했다.
지금도 지하철에서 투쟁하는 형에겐 온갖 악플이 달린다고 한다. '사정은 이해하지만 방식은 동의하지 못한다.' '왜 다른 사람에게 굳이 피해를 주느냐'는 것이다.
그런 이규식 형은 책에서 말한다. 이규식 형과 함께 한 장애인들이 거리에서 버스 아래에서 지하철 선로에서 사슬을 감고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해도 언젠가는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늘어나고, 저상버스가 도입되고, '교통 약자'라는 개념이 생기고, '장애인 차별 금지법'이 제정되었을 거라고. 그러나 이들의 몸부림이 있었기에 그 기약 없는 '언젠가'가 '오늘'이 될 수 있었노라고. 그래서 사람들은 이규식 형을 두고 '미래를 앞당긴 사람'이라고 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