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13집 앨범 < Always in my heart > 발매를 앞둔 안치환 가수가 1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자신의 작업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민
그의 고향은 경기도 화성 매향리다. 철이 되면 매화가 만발하던 조용한 어촌 마을은 1951년 미군 사격장이 들어서며 들썩였다. 폭격 소음으로 고통받던 주민들은 긴 투쟁 끝에 2005년이 되서야 평화를 찾을 수 있었고, 그곳엔 평화공원이 들어섰다.
'저항가수'로 잘 알려진 안치환에게 그래서 운명을 물었다. 약 40년의 음악 인생이 사회적 부조리와 권력에 저항한 노래들로 점철된 게 결국 그의 소명이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오는 4월 정규 13집을 발매하고, 대극장 콘서트를 준비하는 그는 언젠가부터 대중 매체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누구보다 치열하게 곡 작업을 준비했고, 보란 듯이 열네 개의 노래가 꾹꾹 담긴 앨범이 공개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18일 오전 서울 연남동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피가 있다고 생각한다. 거창하게 얘기하고 싶진 않고 반 농담처럼 말한다. 안중근, 안두희를 보면 둘 다 테러리스트다. 하지만 한 사람은 이토 히로부미를, 다른 사람은 김구를 죽였다. 그게 운명이라면 운명일 테고… 제게도 그런 게 있다. 모든 걸 걸고 노래할 때가 있었다. 적어도 두려워서 노래를 멈춘 적은 없다. 물론 두려웠던 때도 있지만, 노래를 안 하지는 않았다. 그걸 피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음악의 길이기도 하다."
새 앨범으로 보는 안치환, 논란의 너머
저항이 비주류를 상징하지만, 1990년대를 풍미하며 안치환의 노래는 대중에 매우 가까이 머물렀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비롯한 숱한 그의 노래가 각종 투쟁 현장에서 불렸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같은 노래는 대학 축제, 직장 회식 자리에 단골처럼 등장했다.
그런데 그의 13집은 좀 다르다. 시인들의 시를 가사로 따오고, 거기에서 떠오른 악상을 붙여 새롭게 해석하는 방식은 여전했지만, 날을 세워 폐부를 찌른다거나 강한 다짐 혹은 풍자의 메시지가 아닌 삶을 돌아보고('난 언제나',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주위를 둘러보려는 의지('어떤 기쁨', '가을이 오는가봐' 등)가 제법 담겨있다. 여기에는 그간 그가 어떻게 음악을 해왔고, 어떤 음악을 할 것인지 결기 어린 고백('언제나 내 마음속에')까지 있다.
"8집, 그러니까 2003년부터 이 작업실에서 모든 노래를 만들었다. 이미 14집, 15집을 작업 중이기도 하고. 8집부터 12집까지 내면서 그때 상황에 맞는 노래들을 선별해 앨범에 넣었다. 근데 그때마다 빠지는 곡이 있더라. 보니까 포크 장르였다. 그간의 뜨거움을 좀 누른 초탈함이라고 할까. 언제 발표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들어도 휴식 같은 노래들이 있다. 내 음악적 뿌리를 보여드린다는 의미도 있고 해서 13집엔 그런 노래들을 모았다. 내용도 뭔가 부담 없이 편안한, 그래서 아내가 이 앨범을 좋아한다(웃음). 여러 이유로 이전 앨범엔 빠졌지만 더 내버려 둘 수도 없고, 이제 이 노래들의 자릴 찾아줘야겠다 생각했다. 왜냐하면 앞으로 제 노래가 더 거칠어지거나 강렬할 수도 있으니.
좀 덧붙이면, 앨범 마지막 곡이 영어로 'Always in my heart'(언제나 내 마음속에)다. 사실 이 노래는 내가 음악을 그만둘 때 들려주고 싶은 노래였다. 내 뿌리는 이거였다 말할 수 있는. 실명들을 거론한다. 비틀즈, 밥 딜런, 남미의 메르세데스 소사같이 저항가요에 영향을 준 사람들, 국내로 오면 김민기도 얘기하고 중학생 때부터 좋아했던 조용필도 나온다. 그리고 시인은 김남주, 정호승 님도 나오고. 이런 이름들이 내겐 소중한 음악적 밑거름이었다. 나의 시대였고, 내 음악이었던 존재들이다."
이번 앨범 직전까지 안치환은 세상의 변화에 명민하게 반응했다. 2012년 <싱글 2012>를 시작으로 디지털 앨범을 내기 시작했고, 2020년 5월부턴 유튜브 채널도 본격적으로 운영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을 기점으로 이 모든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대선 기간 논란이 됐던 '마이클 잭슨을 닮은 여인' 등을 발표하며 겪은 일련의 일들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