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 독도는 우리 땅'을 부르고 있는 독도 가수 서희씨. 그는 최근 '대한민국 독도 노래 50년사 연구'란 논문을 발표해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에 의미있는 한 획을 그었다.
박재헌 포토디렉터
고려 시대 서희 장군은 거란족 소손녕과의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를 되찾았다. 서희 장군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논리에 입각한 탁월한 언변이었다.
천년의 세월이 흘러 인천에 살고 있는 그의 32대손이 독도를 놓고 담판을 벌이고 있다. 이름(예명)도 자랑스러운 조상에게서 따왔다. 이 32대손의 무기는 '노래'다. 독도 가수 서희(본명 서선택). 그가 수십 년간 목이 터져라 노래 부르며 천착해온 독도가 193곡의 노래로 집대성돼 세상에 나왔다.
독도를 노래하는 인천인
지난달 16일 경일대학교 강당. 학위 수여식 특유의 엄숙한 분위기가 한 남성에 의해 급반전됐다. 그가 '신(新) 독도는 우리 땅'을 부르자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오며 학위 수여식장은 이내 콘서트장으로 변했다. 초대 가수의 퍼포먼스가 아니었다. 그는 박사 가운을 입은 어엿한 학위 수여자였다.
독도 가수 서희. 그는 이날 자신의 이력만큼이나 독특한 독도 사랑의 결과물로 학위를 받았다. '대한민국 독도 노래 50년사 연구', 서희씨의 박사 학위 논문 제목이다. 그는 1967년 발매된 '독도의 섬지기'라는 노래가 한국 최초의 독도 노래라는 사실을 논문을 통해 공개했다.
또 193곡의 독도 노래를 발굴해 이들 노래를 시대별·형식별·내용별로 분류하는 한편, 한국사 강사, 의사, 언론인, 스님 등 비직업 가수가 만들거나 부른 독도 노래도 찾아내 논문에 소개했다. 대중음악사에 유의미한 한 획을 그었다는 평이 뒤따랐다. 그는 어쩌다 독도에 꽂힌 걸까.
인천 출신으로서 방송국 레크리에이션 MC로 활약하던 그는 1990년에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2집을 불렀던 일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제가 원래 역사에 문외한이었어요. 그러다 전국의 초등학교 등에서 '어린이 역사 노래 부르기 대회'를 진행하다 보니 우리 역사 속 인물들의 업적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거예요. 노래가 역사 공부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죠."
노래가 공부에 미치는 순기능을 절감한 그는 2006년 독도 문제가 불거진 뒤 '신 독도는 우리 땅'을 부르게 되면서 독도 홍보 활동에 집중했다. 인천의 한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전국 초·중학교를 돌며 153회에 걸쳐 '독도사랑 나라사랑 콘서트'를 개최했다.
"어느 날 행사장 곳곳에 걸려 있는 독도 관련 현수막을 보면서 외국인들에게도 독도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을 우리 국민은 다 알지만 외국인은 모르잖아요. 그래서 영어, 스페인어, 일본어 등 외국어 버전의 독도 노래를 발표했지요. 그러다 보니 외국에서 공연할 기회도 생기더군요."
필리핀, 미국, 오스트리아, 아르헨티나 등 전 세계를 순회하며 공연 및 행사를 통해 독도를 홍보한 것이 23회. 외국에서 초청이 오면 자비까지 들여 찾아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독도 더 알고 싶어 공부... '대한민국 독도 노래 50년사 연구' 결과물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