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참석자들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연합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맞잡은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왼쪽부터 윤희숙 진보당 대표, 이재명 대표, 더불어민주연합 윤영덕, 백승아 공동대표, 용혜인 새진보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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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훈 전 소장의 사퇴 여부와 무관하게 이번 사태가 불러올 파장은 쉽게 지나치기 어렵다.
첫째, 더불어민주연합은 더불어민주당과 진보당, 새진보연합 간 가치 중심의 선거연합으로, 국민의힘의 위성정당과는 다르다는 논리를 지속해서 펼쳐 왔다. 그러나 이번 후보 자격 박탈로 민주당의 입맛에 맞는 후보만 골라내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관철하면서, 사실상 더불어민주연합이 민주당의 위성정당임을 자인하는 결과로 만들어 버렸다.
물론 세 정당의 2월 21일 합의문 마지막 9항엔 모든 비례대표 후보자를 '국민 눈높이'에서 철저히 검증할 것을 명시해 놓고 있다. 그러나 국민후보의 공개오디션은 36명의 심사위원 이외에도 여론조사 기관에서 성별과 나이, 지역, 지지 정당을 고려해 무작위로 선발한 100명의 국민심사단의 숙의와 문자 투표로 진행된 것으로, 한 정당의 공천관리위원회보다 훨씬 더 국민 눈높이에 가깝다.
심사 기준이나 심사위원과 국민심사단 간의 배점, 문자 투표 비율 등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국민 숙의로 짜인 공개오디션에서 선발한 4인 중 3인의 후보가 민주당의 압박으로 사퇴, 또는 후보 자격이 박탈되었다는 것은 국민의 눈높이가 아니라 민주당의 입맛이 기준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임 전 소장의 병역거부 사실은 공개오디션 심사 자료에 이미 다 공개된 내용이다.
둘째, 이번 결정은 야권 연대에도 대단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미 위성정당과 변칙 선거 논란 속에 시민사회는 혼란과 논란에 빠져 있다. 윤석열 정부의 폭정에 저항하기 위한 가치 연합이나 정책연합이라는 항변은 민주당 주도의 이번 결정으로 크게 힘을 잃을 처지에 놓였다. 명분은 사라지고 실리 연합의 성격만 남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여러 논란과 비판을 감수하며 야권 연대를 추진한 연합정치시민회의를 비롯해 진보당과 새진보연합 등 비례정당 참여 세력의 입지는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후보 자격 결정에 시민사회는 물론, 진보당과 새진보연합 역시 의미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오히려 야권 연대를 주장한 이들은 이번 후보 자격 박탈 결정에 심한 모욕감과 굴욕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문제는 단지 후보 한 명의 자격 박탈 차원만의 문제가 아니며, 총선만의 사안도 아니다. 차기 대선까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중대한 사안이다.
셋째, 이번 사태는 적대 정치의 한계, 즉 특정 대상을 반대하기 위해 결집한 정치의 한계를 그대로 노출했다. 적대 정치는 내부의 차이를 극복하고 광범위한 세력을 모을 수는 있으나, 적대 해소 이후의 방향을 보장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적과 최대한의 연대를 기치로 하는 적대 정치는, 그래서 적대적 공간에서의 열망이 적대의 해소 후 절망으로 쉽게 전환된다.
이번 후보 자격 박탈 사태는 힘이 뒷받침되지 않은 연대의 당연한 결과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윤석열 정부의 폭정을 넘어선 세상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병역 기피로 치부하는 20년 전 사고방식이 여전히 지배하는 세상이라면, 굳이 왜 넘어서려 하는가? 정치공학적 표 계산만이 중요하게 간주하는 정치라면, 과연 지금보다 나을 것이란 보장이 어디 있는가?
쟁점다운 쟁점 없는 선거, 이대로 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