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흥도 정려각 전경
박배민
충신 엄흥도
장릉 능침(임금이나 왕후의 무덤)으로 향하는 길은 두 갈래였다. 하나는 재실(왕릉 관리를 위해 관리가 지내던 곳)을 지나는 평지 길이고, 다른 하나는 능선을 따라 올라가는 산길이었다. 오래 걷기 힘들어 하는 어머니가 동행했기에 평지 길을 택했다. 단종 역사관, 재실, '엄흥도 정여각'이라 명명된 비각(비석을 보호하기 위한 집)이 산 아래 나란히 어깨동무하고 있었다.
정여(旌閭)는 충신이나 효자처럼 뛰어난 인물을 칭찬한다는 뜻이었고, '엄흥도'라는 이름은 난생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비각에 담장을 두르고 심지어 홍살문까지 세웠으니 겉모습만으로도 엄청난 위계를 갖춘 비각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현지 안내문을 보니 충신 엄흥도를 기리기 위해 영조 대(1726)에 세웠다고 한다. 비의 주인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비각이 세워진 시기보다 270년 정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