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12월13일 광주문화재단 대표이사 퇴임식. 직원들과 질의 응답을 주고받는 식으로 진행했다.
황풍년
2020년 11월 광주시의회 광주문화재단 대표이사 인사청문회장에선 진풍경이 벌어졌다. 보통 이런 자리에서는 날 선 비판이나 망신 주는 지적이 쏟아지는데 칭찬 일색이었다.
"아무런 흠집도 찾지 못했다", "광주시 인사 최고 작품이다"…. 설립 10년 만에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인물이 광주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선임되는 순간이었다.
황풍년(59)씨는 전남 순천 출신으로 1991년 전남일보에 입사, 국회, 정당, 행정기관 등을 취재하며 경험을 쌓았다. 언론노조 활동을 통해 공정보도와 편집권 독립을 위해 노력했다.
2004년 지역밀착형 신문 <광주드림>을 창간, 3년 동안 편집국장을 맡았다. 앞서 2000년에는 전라도 사람·자연·문화를 다루는 <전라도닷컴>을 창간, 20년 동안 편집장, 발행인을 지냈다. 문화기획자로서 '아름다운 전라도말 자랑대회', '그림속 전라도전', '촌스럽네 사진전' 등을 열어 지역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여주었다. 광주, 전주, 대구 등 여러 지역방송의 프로그램에서 MC와 패널로 활동하면서 지역의 가치를 알렸다.
2016년 한국지역출판연대를 창립해 대표를 맡아 이듬해 한국지역도서전을 시작하는 등 지역출판운동에 불을 붙였다. <벼꽃 피는 마을은 아름답다>(2010), <풍년 식탐>(2013),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2016) 등 지역의 가치를 담은 책을 펴냈다.
2023년 12월, 3년 임기를 마친 그에 대해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지역성에 기반한 문화정책 개발과 지역 문화자산 및 전통문화 발굴을 통한 광주문화 브랜드를 구축해 왔다. 협치를 기반으로 연대와 협력을 강화하며 지역문화기관들의 위상 강화에 힘썼고, 내부에서는 인권 친화적 조직문화 조성을 위해 노력했다."
애지중지하던 <전라도닷컴>을 떠나 3년 동안 그는 무엇을 했을까. 제 자리로 돌아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벼랑 끝에 선 지역잡지, 지역출판의 현장에서 어떤 궁리를 시작했을까. 지난 19일 그를 인터뷰했다.
3년간 그가 광주문화재단에서 한 일
- 광주문화재단 3년 동안 내건 슬로건이 '예술인을 존중하고 시민과 함께하는 광주 문화의 플랫폼'이었다. 여기에 담겨 있는 뜻은 무엇인지?
"문화재단은 지역의 문화다양성을 지켜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힘껏 지원했다. 후자가 지속되어야 전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시민들도 공연·축제·전시에 문화예술교육까지 다양하게 향유할 수 있다. 지역의 역사문화자산을 끊임없이 발굴해 기록하고 남길 필요도 있다. 지역 이야기가 있어야지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에서 재생산이 되고 그것이 로컬리티의 바탕이 된다. 문화재단은 시민에게 문화예술로 서비스하는 기관이다. 시민은 주권자로서 존중받아야 하고 문화예술인들은 창작의 주체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슬로건에는 모두를 주인으로 대접해야 지역의 문화예술이 융성해진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 조직을 신설하고 새로운 사업을 벌였다고 들었다. 몇 가지만 소개한다면.
"청렴감사실을 신설, 직원들이 일상적인 청렴성을 유지하고, 상호 존중과 배려의 문화 속에서 자율성과 자아 존중감을 높이고자 했다. 예술인에 대한 맞춤형 서비스를 위해 예술인 보둠소통센터를 만들었다. 원로예술인들의 인터넷 민원사무를 대행, 예술인에 대한 부당한 갑질, 성희롱·성추행 등 권리 침해를 바로잡는 법률 상담 서비스도 제공한다. 장애인 예술 교육, 장애인 예술가 활동 지원도 한다.
박선홍광주학술상도 제정했다. 박선홍(1926~2017) 선생은 평생 광주의 역사와 문화, 지리를 연구하신 분이다. 유족들이 내놓은 기금 5000만 원을 바탕으로 수상자에게 상금 500만 원과 출간 비용을 지원한다. 광주학을 끊임없이 새롭게 하는 샘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 예술인들을 지원대상으로만 여기는 관행을 바꾸는 시도를 했다고 들었다. 또 대표이사가 직접 사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3년을 돌아 볼 때 아쉬운 점은 없었는지.
"문화예술 현장의 목소리를 모으기 위해 '백가쟁명'을 열었다. 문화예술인, 시민사회단체, 주민 등 여러 당사자들이 연대했다. 마음껏 발표하고 토론하는 것만으로도 주인들의 축제였고 화끈한 소통이었다. 청년예술가들의 소통창구로 문화담론지 <귄있진>을 발행했다. 제호는 지역말 '귄있다'와 매거진(Magazine)의 '진'에서 따왔다. '꼰대'들 간섭 없이 청년들이 알아서 제작·배포하고 토론·평가했다. 창작지원사업 공모 시기도 앞당겼다. 단 한 건도 특정인이나 단체의 지원을 지시하지 않았고, 직원들의 주도로 공정성을 지켰다.
기후위기 시대 예술의 역할을 놓고 광주시민방송에서 1년 동안 예술가, 기획자들이 참여하는 토론방송 MC를 맡았다. 임기 3년 내내 무등산 쓰담 산행도 진행했다. 무등산을 오르며 쓰레기 줍는 쓰담도 하고 무등산에 대한 인문·역사·지리 해설과 자연·생태 체험도 곁들였다.
광주도 전업예술가들은 가난하다. 창작활동을 계속하도록 정책적으로 시장의 기능을 대신해 줘야 한다. 창작지원금 예산을 줄이면 생활이 아니라 생존도 어렵다. 예술가 기본 소득제가 절실하다. 인권도시 광주에 걸맞게 장애인과 노인까지 모두 장애 없이 접근할 수 있는 배리어프리를 실천해야 하는데, 미흡하다. 민주도시다운 문화민주주의 실천도 아쉽다."
"지역이 갖는 숙명적 가치를 인식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