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가 날로 심각해지는 지금 당장, 우리 사회에는 수리권을 요구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참여사회
미국에서는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빅테크(Big Tech)
2) 규제의 일환으로 수리권이 논의되고 있다. 2021년 7월 바이든 대통령은 소비자 수리권 보장과 관련한 일련의 조치를 단행하도록 연방거래위원회(FTC)에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으며, 이에 따라 FTC가 정책성명서를 채택했다.
정책성명서는 제조업자가 소비자와 사설 수리업자의 제품 수리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또한 제조업자가 미국 독점금지법 및 소비자보호법을 위반하면서 수리권을 제한하는 경우 이러한 행위에 대해 어떻게 조치할 것인지도 내용에 담았다. FTC의 정책성명서 채택은 미국의 수리권 운동의 성과로 평가된다. 이 운동에는 공익단체들뿐만 아니라 글로벌 수리 전문 사이트 아이픽스잇 등 다양한 민간 주체가 참여했다.
미국에서 수리권에 관한 사회적 논의는 최근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2012년에 매사추세츠주의 '자동차 수리 권리법(Motor Vehicle Owners' Right to Repair Act)'이 통과되면서 수리권이 본격적으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소비자가 돈을 지불하고 구매한 제품을 손쉽게 수리하지 못하는 것은 소유권 제한"이라는 비판이 계속되면서 2014년 사우스다코타주에서 제품 전반에 걸친 수리권을 보장하는 법안이 미국 최초로 발의됐다.
이후 지속적으로 민간 차원
3) 뿐만 아니라 주 차원에서 입법 노력이 이뤄지면서 2024년 현재 미국 50개 주 가운데 3개 주를 제외한 47개 주에서 수리권 관련 입법안이 발의된 상황이다. 이 중 4개 주(뉴욕·콜로라도·미네소타·캘리포니아)에서는 법안이 이미 통과됐다. 뉴욕·미네소타·캘리포니아주에서는 전자제품에 대한 '디지털 공정 수리법'이, 콜로라도주에서는 '농업 장비 수리에 대한 소비자 권리법'이 통과됐다. 자동차에 한정되었던 수리권이 전자제품과 농기계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이처럼 EU와 미국 등 전 세계 주요국들이 수리권 보장을 위한 법 제도를 시행하면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도 이에 대응하고 있다. 각국 정부가 법안으로 강제하다 보니 수리권 보장에 부정적이었던 제조사들도 수리권 프로그램들을 시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애플이 2021년 말에 미국에서 자가수리 프로그램을 처음 발표한 이후 삼성전자·구글 등도 뒤따르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2년 8월 미국을 시작으로 자가수리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2023년 5월에 한국에도 이를 확대 출시했다. 애플은 지난해 12월 네덜란드·스위스·포르투갈 등 24개국으로 자가수리 프로그램을 확대했다. 현재 애플의 자가수리 서비스는 33개 국가에서 지원된다. 하지만 한국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한국 소비자들은 정부가 수리권을 보장하고 있지 않아 제조사의 선의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다.
수리권 법안 논의조차 못 하는 한국
이렇게 세계적으로 수리권이 확대되는 추세지만, 한국은 민법·자동차관리법·소비자분쟁해결기준 등을 통해 수리권 중에서도 '수리받을' 권리만을 일부 보장해 왔다. 2025년 1월 1일부터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이 시행되지만, 이 법도 '수리할' 권리에 관한 구체적 내용을 규정하지 않는다. 국회에 발의된 수리권 관련 법안들 역시 수리권에 대한 개념 정의 규정을 두지 않거나 특정 제품에만 수리권이 국한되거나 혹은 순환경제와 수리권의 연관성을 고려하지 않는 등 한계를 지니고 있다. 심지어 이마저도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 한 번 이뤄지지 못한 채 폐기될 운명에 처했다.
이제라도 수리권 보장을 위해 EU와 미국 등 주요국의 입법 및 정책 내용을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소비자에게 수리 정보에 대해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소비자기본법을 개정하고, 수리권 보장을 위한 구체적인 입법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수리권은 단순히 소비자 권리 보장을 넘어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순환경제의 핵심 과제다. 기후위기가 날로 심각해지는 지금 당장, 우리 사회에는 수리권을 요구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1) 이승진·송혜진·김재영·임종천, 2022, 〈소비자의 수리할 권리에 관한 연구〉, 한국소비자원, p.35.
2) 일반적으로 대형 정보기술 기업을 뜻하는 말이다. 애플·마이크로소프트·구글 등이 대표적이다.
3) 미국에서 소비자의 수리할 권리 보장을 위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단체는 2013년에 설립된 수리협회(The Repair Association)다. 소비자권리 단체, 사설 수리업체, 환경단체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돼 있으며 미국의 거의 모든 주에서 수리할 권리와 관련한 입법 활동을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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