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직전담당교사가 공연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하고 있다.
안사을
2024년 2월이 되어서야 2023학년도 초반에 기획했던 융합 수업 중 통합기행과 뮤지컬이 결과물이 완성되었다. 7박 8일로 다녀왔던 통합기행은 3월부터 10월까지의 사전 수업 후 10월 중순 막 시작된 가을빛 강원도 산속에서의 이동학습을 정점으로 하여 100쪽짜리 단행본을 인쇄하는 것으로 수업을 마무리했다. 방학 중에도 나와서 수고한 아이들이 있었다.
뮤지컬은 9곡의 창작곡과 30분 정도의 연극 대본을 엮어 1시간이 넘는 한 편의 공연을 완성했고 12월 29일 저녁 성황리에 마쳤던 공연 실황을 녹화한 후, 장면을 편집하고 자막까지 세세하게 넣어 외부에 배포하기 위한 영상을 만드는 것으로 마지막 작업을 마쳤다.
사북항쟁에 관련된 내용이니만큼, 당시 사건의 재평가와 재심을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고 계신 분들에게 전달되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또한 다양한 사람들이 교과서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사북항쟁의 내용을 알고 당시 민주화 운동, 노동인권운동의 흐름 안에서 본 사건을 이해하기를 바란다.
▲ 창작뮤지컬 <내 사랑 사북> 전체 ⓒ 안사을
학생의 손에서 탄생한 창작뮤지컬
2022년 공연한 <4.3의 언덕 너머에는>을 만들고 익히던 당시에도 글로 이루 다 쓸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맨땅에 헤딩한다'라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아이들을 닦달하고 곡을 쓰고, 공연 직전까지 반주 영상을 수정하며 전쟁 아닌 전쟁을 치렀다.
이번 뮤지컬도 그런 모습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학생의 손에서부터 시작되는 창작뮤지컬이었다는 점에서 가장 큰 발전이 있었다. 여러 이유가 있다. 전년도 아이들보다 눈에 띄게 창작 욕구가 높은 학년인 것도 큰 원인이었고, 4.3항쟁을 다루었을 때보다 조금은 덜 무거운 마음으로 역사적 사실을 대할 수 있기도 했다.
사건의 당사자 처지에서 보면 모든 일이 동일한 수준에서 끔찍하고 무거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배우고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두 사건이 조금 달랐다. 무게감의 차이였다. 1948년 전후 제주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은 너무도 규모가 크고 처참한 일이어서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드는 압박감이 있었다.
읽기 자료를 통해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고 당시 제주의 상황을 함께 나누는 것만으로 이미 아이들의 감수성은 그 한계를 보이는 듯했다. 대본을 만들어본다든지 가사를 써본다든지 하는 활동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모든 창작은 고스란히 교사인 나의 몫이 되었다. 심지어 실수로 인한 폭소를 예방하기 위해 거의 모든 내용은 미리 녹음된 노래로 연결되었다.
그때와 비교해보면 사북항쟁을 공부할 때는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사건을 만날 수 있었다. 이옥수 작가의 <내 사랑 사북>이라는, 우리 뮤지컬의 원작이 되어준 소설 덕분이기도 했다. 세상 물정이라곤 하나도 모르는 중학생을 화자로 둔 명랑 청소년 소설이었다. 오히려 그 영향으로 우리는 사북항쟁을 더욱 깊이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