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로 활동하던 시절의 바바라.
바바라
2014년부터 저는 일본에서 가수 활동을 하게 되었고, 보컬 트레이닝 일도 병행하게 되었습니다. 밤마다 심해지는 알코올중독 증상은 여전했고, 기이한 섭식장애 행동 역시 계속됐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170cm의 키에 체중은 52kg 수준이었고, 근육량이 심각하게 줄어든 상태였기 때문에 툭하면 다치고 뼈가 부러지기 일쑤였습니다.
다이어트약 중독에 알코올중독... 내면 직시가 두려웠다
언젠가는 피부과 화장실에서 정신을 잃었고, 병원에서 헤모글로빈 수치가 5.5까지 떨어진 것이 발견돼 바로 입원해 응급으로 피를 수혈받기도 했습니다. 몸이 심각한 상태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가수 활동을 하며 받은 정신적 고통과 내 몸에 대한 증오를 잊으려 저는 더더욱 술을 마시고 고용량의 다이어트약을 삼켰습니다.
역시 거식증과 알코올중독을 겪었던 미국 작가 캐럴라인 냅이 책 <욕구들>에 그렇게 썼었죠. 자신은 알코올중독 증세가 가장 심각했을 때 일중독에도 빠져 있었기 때문에 사회적 지위는 계속 올라갔다고요. 저 또한 알코올중독과 다이어트약 중독으로 매일 밤 스스로를 망가뜨리면서도 일에는 계속 매달렸습니다. 내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너무 두려웠습니다. 외부에서 오는 모든 폭력을 스스로 막아낼 힘도, 저를 지켜줄 만한 가까운 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쉬지 않고 일을 하고, 굶고, 약을 먹고, 술을 마시고, 폭식하고, 토하기를 반복하는 것이 매일 일상이었습니다. 저는 아주 비밀스럽게, 또 아주 지독하고 끔찍하게 혼자 스스로를 죽여가고 있었습니다.
2018년, 기획사와의 갑작스러운 계약 종료로 가수 활동이 공식적으로 끝이 난 뒤에야, 저는 정신과를 찾게 되었습니다. 뭔가 잘못됐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얼마나 망가져있는지는 몰랐던 제게 내려진 진단은 중증 우울증, 범불안장애, 높은 수준의 알코올 의존도였습니다.
게다가 심장 근육에 매우 해로운 고용량의 식욕억제제(다이어트약)를 약 8년간 매일 복용해 온 것이 가장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병원에선 우울증 치료와 중독 치료를 병행했습니다. 심리상담도 시작하며 그동안 무서워서 들춰보지 못했던 제 삶도 하나하나 되짚어보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망치는 행위도 충분히 괴로웠지만, 거기서 빠져나와 회복하는 과정은 몇 배로 더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그게 괴로워 다시 술을 마시기도 했습니다. 좋은 전문가들이 곁에 있었지만 늘 외로웠습니다. 세상에 나 혼자인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 제 마음을 알아주는 건 술과 다이어트약뿐인 것 같았습니다.
치료 6년 차에 접어든 지금은 금주에 성공한 지도 3년이 다 되어갑니다. 다이어트약을 끊은 것도 1년이 넘었습니다.
회복은 나를 기다려주는 시간... 그럼에도 감사하는 이유
섭식장애에서 빠져나오는 회복의 시간은 곧 나를 기다려주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반복해서 스스로를 망치기만 했던 제 자신을 몇 백 번이고 참아주고 위로해주어야 했습니다. 끊임없이 저와의 관계를 다져온 6년이라는 시간은 제 인생에서 가장 괴로우면서도 가장 멋진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멀지만요.
저는 현재 허리 디스크 치료를 받고 있고, 만성 역류성 식도염을 달고 살고, 여전히 밤에 자던 중 깨어나 무언가를 먹다가 잠들어 깨어나면 기억하지 못하는 증상을 갖고 있습니다. 굶으며 학대하던 시절 두 번이나 부러진 왼쪽 발목은 재활 타이밍을 놓쳤고, 또 갈비뼈가 골절되는 등 후유증이 있었습니다. 허리 디스크는 그 뒤 찾아온 추가 후유증일 겁니다.
섭식장애는 마음의 도미노처럼 느껴집니다. 한 번 굶어봤을 뿐인데. 한 번 다이어트약을 먹어봤을 뿐인데, 그 행동은 마치 도미노처럼 저의 정신과 건강을 차차 무너뜨렸습니다.
오랜 섭식장애의 후유증은 앞으로도 제게 채무 이행을 요구할 겁니다. 뼈가 약해져 쉽게 부러지고, 위장이 찢어지고, 위액을 토해내는 일상에서 여전히 저는 그때의 자국들을 열심히 청소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제 앞으로의 삶은 내가 겪어온 섭식장애를 껴안고 청소하고, 또 그러는 나를 기다려주는 일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