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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그림을 마주하는 '나'는 더이상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화상은 근본적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동서고금의 천재적 화가들은 이 질문에 대한 자신의 답을 천재적 발상과 예술적 재능을 쏟아 넣어서 자화상을 남겼다.
화가가 남긴 자화상은 천차만별이니 우리는 그 많은 자화상 중에서 자신과 처지가 같은 자화상을 만나기 마련이다. 즉 우리는 화가가 남긴 자화상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며 자신이 좀 더 건강하고 행복한 존재로 거듭나기 위한 동기를 마련할 수 있다.
따라서 그림을 마주하는 사람은 그들이 남긴 자화상을 누림으로써 진실한 자신을 만나고 성장할 수 있다. 더불어 자화상에는 다양한 시대적 배경, 미술사, 그림의 여러 기법 등이 담겨 있으니, 미술에 대한 안목을 키울 수 있고 다양한 시대의 역사에 대한 지식도 넓혀갈 수 있다.
<자화상 내 마음을 그리다>에는 명화 104점이 담겨 있다. 우리는 104가지 인생을 발견할 수 있고 104가지 세상을 체험할 수 있으며 104가지 통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믿고 있는 사람에게 배신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존재하기 어렵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배신하는 존재이며 자신의 이익을 따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배신당한 사람들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도 있다. 그럴 때면 더 이상 분노에 시달리지 말고 '베브 두리틀'의 명화 <내 영혼의 비상>을 감상해 보자.
이 그림 속 모델은 혼자 강가에 앉아 초록색 자연을 감상한다. 그리고 시선은 우측 상단을 향한다. 이런 시선의 흐름은 눈앞의 현실보다는 다른 곳으로 시각 전향을 유도한다. 즉 답답하고 화가 날 때는 일단 밖으로 나가서 높고 푸른 언덕을 바라보자고 김선현 작가는 조언한다.
그러고 보니 그 누구보다 아낀 사람에게서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고통스러운 1년을 보내고 있는 내가 사는 아파트 1층 밖 풍경에 탄성을 지은 이유를 알겠다.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아파트 정원인데 나는 왜 이 풍경에 감탄하고 지금까지 이 풍경을 좀 더 누리지 못하고 산 것을 후회할까?
고통스러운 현실을 잠시 벗어나 초록 세상에 귀의하고 싶은 본능적인 욕구가 별것 아닌 아파트 정원에 위로받고 넘쳐나는 행복감을 느끼도록 나에게 시킨 것은 아닐까? 화가 날 때 우리가 담배를 피우면 화가 다소 가라앉는다면 그것은 담배 덕분이 아니라 담배를 피우는 공간과 공기가 준 효과는 아닐까?
자화상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화가가 바로 빈센트 반 고흐다. 그가 남긴 유명한 자화상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에서 태연하게 파이프를 물고 있는 반 고흐는 불안, 고독, 불행과 싸우면서 자신이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습을 상징한다.
고흐는 조현병, 가난, 우울증, 알코올 의존증이라는 핸디캡을 안고 있었지만,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아름다운 작품으로 남겼다. 스스로 귀를 자르고 붕대를 감았지만, 그는 파이프를 물고 태연히 정면을 바라보는 자화상은 그의 용기를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