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미술관장 정희두고려미술관 관장 정희두는 현재 고려미술관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기 위한 그의 노력은 처절했다. 사투를 벌인다는 말이 저런 것일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권미숙
돈도 돈이지만 그 정성이 얼마나 갸륵한가? 문인석, 무인석, 망주석, 동자석 등 대부분이 무덤에 세우는 석물들인데 팔려고 하지 않으면 때로는 무덤에 세우는 석물들이라 집에 두면 좋지 않다고 으름장을 놓아 매입하기도 했다는 후일담도 들었다.
귀화인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이상했어요. 국가나 호적이 없던 시대에 귀화인이라는 단어는 말이 안 되죠. 귀화인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일본서기입니다. 고사기 등의 사서에는 <귀화>라는 단어가 전혀 나오지 않고 <도래>라는 단어가 사용됐어요. 저는 <귀화인>이라는 단어를 <도래인>이라는 단어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 책을 썼습니다. 천황이 언급했듯이 간무 천황의 어머니가 백체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썼습니다. 일본의 고대사를 연구하다 보면 한국에서 온 사람들의 역할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깨닫고 1965년에 <귀화인>이라는 책을 썼는데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도래인>의 역할은 단순한 영향이 아닙니다. <도래인>은 일본 문화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 영화 <정조문과 항아리> 중 우에다 마사아끼 인터뷰
1965년 우에다 마사아끼 교토대학교수는 <귀화인>을 출간했다. 그는 <도래인>이라는 말을 규정하고 보급하는 데 힘 쓴 일본 사학자다. 고대 일본에 건너온 한국인은 귀화인이 아니고 도래인이라는 그의 역사 인식은 정조문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는 김달수(재일본 소설가), 이진희(재일본 역사학자), 시바 료타로(작가) 등과 우에다 마사아끼 교수를 찾아가 친분을 맺어가며 일본 속 조선의 역사를 탐구하는 조선 문화사(朝鮮文化社, 1969)를 설립했다.
계간지 <일본 속의 조선문화>를 50호까지 발간했다. 뿐만 아니라 1972년부터 일본에 거주하는 역사학자들과 일본 각지에 흩어진 조선 문화재를 찾아다니는 답사 여행도 정기적으로 마련했다고 한다. 조선 관련 유적들을 답사하는 활동도 활발하게 진행하며, 답사 여행 후엔 잘못 표기된 정보를 바로잡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그전에는 호류지 미륵반가사유상을 일본에서 만들었다고 쓰여 있었어요. <일본 속의 조선문화> 연구팀이 문제를 제기해 바로잡았습니다. 미륵반가사유상은 적송을 만들어졌는데 일본에는 적송이 없다고 반론을 제기해 수정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고려미술관에 담았던 소망은 재일 조선인 3, 4세의 정체성 문제다. 내가 고려미술관에 가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고향에) 너무너무 가고 싶습니다. 너무너무 가고 싶지만 분단 때문에 못 가는 서러움을 항상 느끼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재일 조선인 3세, 4세가 태어나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복잡한 남북문제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여기 놀러와 통일되었던 멋진 시대 고려를 느낄 수 있다면,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 옛 선조들이 이런 도구를 쓰며 살았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것입니다. 책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보여 주고 싶습니다. - 광복 70주년 특별기획, 위대한 유산 1부 중
휴관의 이유가 '혹시 예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현 고려미술관장 정희두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을 때 예산 부족으로 운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조문, 나라가 지켜주지 못한 그가 통일 조국을 위해, 민족을 위해 고려미술관을 만들었다. 고려미술관 개관 4개월 후, 그는 고려미술관 품에서 세상을 떠났다니 고려미술관은 정조문의 목숨이다.
"특히 사립 박물관은 힘듭니다. 오사카시가 만든 이곳(오사카 동양 도자기 박물관)도 매년 예산이 점점 줄고 있는데요. 미술관 수입의 대부분은 입장료입니다. 유지 자본이 없으면 어렵습니다." - 영화 <정조문과 항아리> 중에서 오사카 동양 도자기 미술관 명예 관장 이토 이쿠타로의 인터뷰
한국에서 일부러 찾아온 손님을 제때 맞지 못하는 속내도 알 수 있었다. 고려미술관 학예사들도 다 그만둔 상태로 외손녀 수혜씨만 남아 있단다. 연중 5회 열었던 특별전도 1회로 줄었단다. 그리고 이렇게 휴관 기간도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