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연구단지 전경. 앞쪽 주차장을 포함해 넓게 자리하고 있는 곳은 국립중앙과학관이다. 국립중앙과학관 왼쪽 뒤편 성두산 너머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자리하고 있다. 오른 편 탄동천을 따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한국조폐공사, 한국생명과학연구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좌우로 자리하고 있다. 멀리 뾰족뾰족 보이는 산이 대전현충원 뒤로 자리한 갑하산, 신선봉, 우산봉, 흔적골산이다. 그 왼편 뒤로 계룡산도 보인다.
임재근
대덕연구단지에서 나라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헌신한 과학자 중에 국립묘지 대전현충원에 묻힌 이들도 있을까요?
대한민국 최초 인공위성 '우리별'의 아버지라 불린 최순달(1931-2014) 박사가 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 31호에 잠들어 있습니다.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 전기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최 박사는 1976년 귀국해 (주)금성사 중앙연구소 초대소장, (주)동양나이론 전자사업부 상무, 한국전기통신연구소 초대소장, 한국전자기술연구소 소장, 한국전력공사 초대 이사장을 거쳐 1985년 한국과학기술대학(현재의 KAIST 학부과정) 초대학장이 됐습니다. 이후 체신부장관, 한국과학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한 후 1989년 KAIST에 복귀해 인공위성연구센터를 설립하고 초대 소장을 맡았습니다.
그는 인공위성의 불모지에서 처음부터 국내 개발은 힘들다고 판단해 KAIST 학부 졸업생 5명을 영국 써리대학으로 유학을 보내 위성공부를 하도록 했습니다. 1년여 간의 공부를 마친 학생들은 1991년 1월 영국 써리대학 써리위성기술회사(SSTL)의 인공위성팀과 공동으로 우리별 1호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그 결과 1992년 8월 11일 프랑스령 기아나 우주 센터에서 우리별 1호를 쏘아 올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우리별 1호'는 인공위성 개발기술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이 처음으로 쏘아 올린 인공위성이었고,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22번째로 위성을 보유한 나라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비록 처음에는 타국의 도움으로 쏘아 올렸지만, 이어 자국 기술로 우리별 2, 3호를 쏘아 올리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최순달 박사의 묘비에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TDX와 우리별 위성 개발은 단순히 기술개발 성공의 의미를 넘어 우리나라 과학기술계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을 심어준 겁니다'라는 글이 쓰여있습니다.
TDX(Time Division Exchange)는 시분할 방식 전자교환기를 의미합니다. 최순달 박사가 1981년 한국전기통신연구소(현 ETRI) 초대 소장으로 임명되었을 때는 전화 개통 수요가 급증할 때였습니다. 하지만 개통 속도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전화를 신청하고도 설치하는데 1년 이상이 걸릴 정도로 심각한 적체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정부에서는 전기통신연구소에 240억 원의 예산을 지원하며 TDX 개발을 맡겼습니다.
전기통신연구소 연구팀은 초대형 국책 과제라는 부담과 무도한 도전이라는 우려를 '실패하면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다'는 일명 'TDX 혈서' 각서를 쓰며 혼신의 연구를 이어갔습니다. 결국 3년 만에 TDX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TDX 개발은 교환기 부족에 따른 전화 적체 문제를 해소했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이 향후 정보통신강국으로 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지난 2014년 10월 18일, 83세의 일기로 사망한 최순달 박사는 2017년에 과학기술유공자로 지정됐습니다. 과학기술유공자는 2015년 12월 22일 제정된 '과학기술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연구개발 및 기술혁신 활동에 종사하는 과학기술인 중에서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이 현저한 사람 중에 선정합니다. 최순달 박사를 비롯해 32인이 2017년 12월에 처음으로 '과학기술유공자'로 지정됐습니다.
원자력계의 대부와 과학행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