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서울 중구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사무실에서 유해정 센터장이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1995년),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참사(1999년),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1999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2003년), 가습기살균제 참사(2011년), 공주사대부고 병영체험학습 참사(2013년), 세월호 참사(2014년),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2017년) 등 한국 재난 참사를 설명한 글들을 보여주고 있다.
복건우
- 이야기를 기록하는 활동가인데 센터장을 맡기까지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맞아요. 저는 센터가 재난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자리였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재난을 둘러싼 기록은 정부의 일방적인 공보나 피해자의 주관적인 증언으로만 이뤄졌어요. 새로운 이야기는 공보와 증언 사이에 누군가가 끼어들 때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기자들이 국가를 향해 '정부는 어떤 대책이 있습니까'라고 물을 때, 기록자가 피해자에게 '참사 이후 당신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나요'라고 물을 때 비로소 생겨나요. 센터를 찾아오는 시민들, 연구자들, 문화예술인들 사이에서 피해자의 증언이 퍼지고 또 그 증언을 들은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어 갈 때 재난 참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뀔 수 있다고 믿어요. 그것이 이야기를 듣는 인권활동가와 센터장 사이의 접점인 것 같아요."
- 센터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참사로 수백 명이 죽어도 '교통사고 사망자가 더 많잖아', '놀러 가서 죽은 게 뭐 자랑이야' 같은 반응이 나와요. 또 피해자의 증언에만 기대면 사람들은 피로감을 느끼고 본인의 일이 아니길 바라면서 피해자 탓을 하게 돼요. 세월호 침몰 장면, 유가족이 정부에 투쟁하는 장면으로만 참사를 기억하는 게 아니라 시민들이 피해자를 만나 이야기한 경험, 웃었던 경험, 따뜻한 음식을 나눴던 경험, 자기 삶의 무언가를 바꾸게 된 경험을 센터에서 함께 만들 수 있었으면 해요. 그런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법과 제도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난 1월 31일 개소식에서 나눠준 책자에는 센터의 주요 사업들이 소개돼 있었다. 재난 피해자들이 도움이 필요한 분야의 전문인력을 연결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4·16 긴급지원기금', 재난 피해자가 다른 피해자를 도울 수 있도록 교육하는 '재난안전 전문가 양성', 재난 피해자 권리 증진을 위한 '권리 매뉴얼 발간' 등이 대표적이다.
- 권리라는 말이 좀 추상적인데, 센터의 구체적인 과제는?
"우선 '권리 매뉴얼'을 만드는 게 목표예요. 가령 이태원 참사 유가족은 자식이 죽기 전에 어디서 발견됐고 어떻게 병원으로 옮겨졌는지 알고 싶어해요. 국가로부터 구조 수색 일지를 받아보고, 변사 사건 종결서를 받아보고, 부검 보고서를 받아볼 수 있도록, 그리고 각 단계별로 누구에게 어떤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지, 근거 법률은 무엇인지 체크리스트로 파악할 수 있게끔 매뉴얼을 만들고 싶어요."
- 초대 센터장으로서 바람이 있다면.
"센터가 잘 안착하면 머지않아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같은 재난 피해자들, 특히 형제자매와 생존자가 센터장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이 청년들은 자신들의 세계가 무한히 넓어져야 하는 시기를 통과하고 있어요. 앞으로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고, 회사에 다니고, 거기서 또 여러 관계들을 맺을 텐데, 재난 피해자라는 정체성이 이들의 세계에 걸림돌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재난은 끔찍하고 참담해서 어둡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손으로 센터가 운영되면 좀 더 다른 색채의 기억과 추모, 법과 제도가 생겨나지 않을까 기대해요."
재난참사를 향한 날선 말들이 여전한 가운데, 유 센터장은 재난피해자권리센터가 한국 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건물이 무너질까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있는 건 삼풍백화점 참사가 있고 나서 부실 건축물을 지을 수 없도록 법과 제도가 바뀌었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대중교통을 타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건 대구지하철 참사가 있고 나서 지하철 객실 의자가 불연재로 바뀌고 탈출용 망치 같은 비상 도구가 설치됐기 때문이에요. 이 모든 건 재난 피해자와 가족의 끊임없는 눈물과 고통이 있었기에 가능했어요.
센터가 궁극적으로 해야 하는 일도 그런 변화를 만드는 거예요. 재난 피해자들을 '시체 장사하는 사람들', '자식의 죽음을 팔아 한몫 챙기는 사람들'로 손가락질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해요. 그분들은 우리 사회에 도움을 줬던 사람들, 슬픔을 갖고 있지만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재난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건 특별한 사람에게 특혜를 주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좀 더 안전해지기 위한 비용을 미리 지출하는 일이라는 걸 꼭 말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