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객이 이불을 사러 가게를 들렀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설날에 방문할 아들을 위한 것이란다.
<무한정보> 황동환
현재 한복은 마 대표가 직접 짓지 않는다. 고객이 한복을 맞추려면 먼저 매장에 비치해 놓은 다양한 형태와 색깔의 한복 샘플 사진책을 보며, 원하는 디자인을 고르면 된다. 그 다음부턴 마 대표가 해야하는 일이다. 그는 고객의 치수를 재고, 고객이 선택한 옷감의 일련번호와 함께 서울 광장시장에 제작을 의뢰한다.
예전엔 주흥상회 길 건너편에 옷 재단 가게가 있어, 그곳에 맡기면 됐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반면, 광장시장에는 치마 꿰매는 사람, 저고리 꿰매는 사람, 고름접는 사람 등 한복 부분별로 전담하는 인력이 있다.
그는 여성 한복의 옷 맵시를 좌우하는 포인트는 저고리에 있다고 강조한다. 진동, 동정, 소매, 고름, 총장 등을 각각 치수에 맞춰 만들어야 하기에 작업과정이 많고 손이 많이 간다. 특히 당의 저고리는 원단도 많이 들어가고 손도 훨씬 많이 간다.
"예전 한복을 보면 소매가 넓고 풍성한 데 비해 요즘 한복 저고리는 좁은 게 특징"이라며 "한복 한 벌 맞추는 데 들어가는 공임비는 15~20만원이다. 여기에 옷감 가격을 더하면 보통 비용은 50만원 정도한다. 가장 싼 게 35만원이고, 비싼 경우엔 80~100만원 짜리도 있다"고 설명한다.
점차 변하는 시대상
개업 당시 주 품목은 시어머니가 장날마다 취급했던 생활의류와 이불이다. 점차 주단, 포목으로 취급 품목을 조금씩 확대했다. 현재 가게 안에 진열돼 있는 양말, 속옷, 내복, 여성의류, 아동의류 등은 명절이나 환갑잔치 등 가족 친지들의 모임이 있는 집에서 찾기 때문에 구비해 놓았다.
"지금은 아기가 있는 집이 귀하다. 아기 옷을 찾는 사람들도 거의 없다"고 한다. 저출산의 사회적 여파를 주흥상회도 고스란히 겪고 있는 것. "아기 이불 세트도 있지만 거저 줘도 가져갈 사람이 없다"며 "확실히 시대가 변했다"고 목소리 톤을 살짝 높여 강조한다.
장날이면 시장에서 시어머님이 옷 장사를 했는데, 혼자서 버거워 하는 모습을 보고 마 대표와 남편이 일을 도왔다. 남편이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옷을 떼다가 기차 편으로 예산으로 가지고 오면, 시어머님이 그 옷을 장에 내다 파는 식이다.
1980년에 가게를 매입하고 '주흥상회'를 열면서 시어머니는 시장 한복판에서 겪어야 했던 더위와 추위를 피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의 2층짜리 현대식 건물은 2013년에 신축했다.
마 대표는 "시어머니가 가게를 매입할 당시, 가게 앞 거리는 일제강점기 때 지은 창고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고 말한다.
당시 각 가정에서 직접 이불 꿰매거나 간단한 옷수선 정도는 으레 하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재봉틀을 다룰 줄 알았다. 마 대표 역시 따로 재봉기술을 배운 것은 아니었지만, '미싱' 정도는 할 줄 알았기에 시어머니를 도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도 목화솜 이불 만큼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목화솜으로 이불을 짓기가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다. 솜틀집에서 가져온 목화솜을 원하는 두께와 넓이로 골고루 펴고, 여기에 맞춰 이불감을 꿰매야 하는데, 손이 많이 간다"며 "요즘엔 찾는 사람들이 없기도 하지만, 만드는 과정이 어려워 하지 않는다"고 손사래를 친다.
그러면서 "며칠 전에 동네 어르신이, 오랫동안 사용하던 목화솜이불 커버가 해져 가져왔길래, 새 커버로 교체해 드렸다"며 "요즘 사람들은 가벼운 이불을 선호하지만, 나이 드신 분들은 지금도 목화솜이불을 더 좋아한다. 무게감이 있어 덮고 있으면 따뜻하고 푸근하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