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사 일주문 앞 표지석에 '琵瑟山 消災寺'가 새겨져 있다. 꼭 한자로 써놓아야 하는가?
정만진
비슬산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 길이를 자랑하는 '빙하기 돌강' 자연유산이 있다. 이곳 빙하기 돌강은 산 입구 소재사에서 정상부 대견사터 턱밑까지 이어진다. 따라서 비슬산 빙하기 돌강 유적을 온전히 감상하려면 소재사를 출발 지점으로 잡아야 한다.
여러 대의 자동차가 동원된 집단 답사 경우에는 호텔 아젤리아(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일연선사길 10) 주차장에서 만난다. 호텔 주소가 잘 말해주듯 이 길은 '일연선사길'이다. 일연이 비슬산에서 장장 37년이나 수도 생활을 했으니 '일연선사길'이라는 이름을 길에 붙인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지나치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100m쯤 포장도로를 따라 산 쪽으로 들어가면 '琵瑟山 自然休養林' 표지석이 나타난다. 왜 '비슬산 자연휴양림'이라 한글로 쓰지 않고 한자를 새겨놓았을까? 아쉬운 안타까움이 샘솟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려운 글자를 읽으려고 기웃거리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한자로만 쓰인 표지석, 힘이 빠진다
조금 나아가면 지금껏 걸어온 포장도로를 계속 갈 것인지, 아니면 오른쪽으로 난 좁은 옛길을 선택할 것인지 묻는 지점이 나온다. 물론 왼쪽 길은 주로 차도로 사용되는 까닭에 위험하니 오른쪽 좁은 길, 즉 옛길로 걸으라는 안내판 덕분에 망설일 일은 없다.
좁은 길로 들어서자마자 '비슬산 산림 치유 센터'가 오른쪽에 나타난다. 센터 건물 옆으로 곧장 입산하거나, 조금 더 직진해 가서 길 오른쪽에 세워져 있는 등산로 진입 이정표를 따라 올라서면 '포산2성' 설화에 등장하는 두 성인 중 관기의 성함을 이어받은 관기봉(992m)에 닿는다. 그 길은 관기봉 등정을 원하는 경우 가장 빠르게 닿을 수 있는 첩경이다.
다만 지금은 관기봉 정상이 목적지가 아니므로 그 길을 선택할 이유는 없다. 비슬산 돌강이 흐르는 계곡을 향해 망설임 없이 전진한다. 작은 다리가 나타난다. 소재교이다. 소재사(消災寺)라는 이름의 신라 고찰이 계곡 바로 너머에 있는 까닭에 그런 이름이 붙어졌다. 소재사에 문화재로 지정된 대웅전과 목조지장보살좌상이 있다.
결정할 일이 한 가지 있다. 비슬산 고위평탄면에 올랐다가 현 위치로 하산할 계획이면 지금은 소재사를 외면하고 그냥 지나쳐야 한다. 세계 제일의 빙하기 돌강 유적이 오늘 답사의 핵심이라는 점도 있지만, 산을 오르는 출발 시각에 지나치게 시간과 체력을 소모해서는 곤란하다. 소재사는 하산 후 일정을 보아가며 답사 여부를 결정할 일이다.
하지만 유가사 쪽으로 하산할 것이면 소재사를 지금 둘러보아야 한다. 앞에서, 빙하기 돌강 중 세계 최장의 것이 비슬산에 있다고 했다. 비슬산에서는 당연히 빙하기 돌강 답사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소재사 대웅전‧목조 약사여래 좌상, 대견사터 3층석탑 등 우리나라의 역사문화유산들을 둘러보아야 한다. 소재사에 문화재가 있으니 빼놓지 않고 찾아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소재사 일주문 앞에 선다. 그런데 사찰 표지석에도 '琵瑟山 消災寺'라 새겨져 있다(비슬산 소재사). '琵瑟山 自然休養林' 표지석과 마찬가지로, 한자를 알지 못하면 읽을 수 없다. 많은 사람에게 알리려는 것이 표지석 건립의 목적일 텐데, 왜들 이렇게 한자 사용만을 좋아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