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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와 함께 온 노인 우울증, 이렇게 벗어났다

동네서점 특강 뒤 시작한 글쓰기... 자존감이 높아지면서 나는 달라졌다

등록 2024.02.01 17:04수정 2024.02.0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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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되돌아보니 어느새 내 나이는 80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나이 들어가면서 찾아오는 무력감, 노년의 몸에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병으로 인해 먹는 약도 몇 가지가 더해졌다. 그러면서 마음이 순간순간 울적해지는 때가 잦았다. 아마도 이게 우울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3년 전 즈음엔 동네 보건소에 가는 일이 많았다. 남편과 나, 부부가 함께 건강교육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에 참여하면 혈압과 당뇨 체크는 기본, 건강 수첩에 날마다 체크를 했었다. 그런데 보건소에서 남편은 괜찮은데, 내 혈압과 혈당 수치가 높다며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지켜보자고 했다.

그러다 교육이 끝나는 날, 혈당 수치가 높은 탓에 병원에 가 전문 검사를 하고 약을 먹어야 하는 단계라고 듣게 됐다. 거기다 혈압약, 콜레스테롤약까지 함께 먹어야 했다(당뇨가 오면 혈압 등은 다 따라다니는 병이라고 한다). 겪어보니, 정말이지 당뇨라는 병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고약한 병이었다.

울고 싶었다, 사는 게 괴로웠다 
 
 겪어보니, 정말이지 당뇨라는 병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고약한 병이었다.
겪어보니, 정말이지 당뇨라는 병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고약한 병이었다.elements.envato
 
진단을 받고 나자 일상 생활에서 소소한 주의 사항과 먹어야 하는 것, 먹지 말아야 할 것 등 온통 신경을 써야 할 일들로 가득 찼다. 사람이 살아가는 즐거움 중에 보통 먹는 즐거움이 가장 크다고들 말한다. 이전과 달리 먹을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게 되면서, 울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고통이 차 올랐다.

처음 당뇨와 혈압, 고지혈증을 진단받고서는 놀라고 당황스러워 한동안 우울증으로 힘들어했다. 내가 좋아하던 과일과 빵, 떡 종류를 비롯해 맛있는 음식들을 먹지 못한다는 사실이 가장 우울했다. 과일 중에 감, 포도, 수박 같은 단 음식은 모두 금지됐고 중국 음식도 삼가야 했다. 매일같이 운동을 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사는 일이 즐겁지가 않았다. 남편은 곁에서 나보다 더 내 식습관에 야단을 하면서 나를 힘들게 했다. 걱정되니까 그렇겠지 하면서도, 한편으론 내심 섭섭했다. 말 한 마디 나누기 싫을 정도로 기력과 기운이 떨어졌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 들면 아프기도 하고, 이런저런 시련을 견디고 사는 게 인생이란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은 쉽게 용납이 안 됐다.


답답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이런 일을 나 혼자만 겪는 일도 아니련만, 그 순간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저 혼자서 우울했다. 자존감이 바닥이었다.

출구를 찾아야 했다. 무엇인가에 몰입하며 우울한 마음을 잊어야 할 것 같았다. 우울한 게 내가 나를 놓지 못하는 욕심 때문 아닌지, 나이듦과 병듦은 누구나 찾아오는 인간의 생로병사인데 꼭 혼자만 겪는 일처럼 감당 못하고 고통스럽다 난리 치는 건 아닌지 하면서 천천히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 즐거운 일이 무엇일까? 스스로 진지하게 물어봤다. 그리고 2020년 2월 어느 날, 동네 뜨개방에서 들은 한 작가의 서점 특강을 찾아가 들으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글쓰기 모임을 찾아가 이런 저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주변에만 의존하고, 사람들이 내 기대에 못 미칠 때 섭섭하고 우울했던 마음에서 천천히 헤어 나오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 다시 나를 찾는 것 같았다. 수용의 자세를 배우기 시작했다.

글을 쓰자 쏟아진 공감... 살아있다고 느꼈다

특히 언론에 글을 보내면서 많은 게 달라졌다. 스승 작가의 권유로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처음에 글이 채택됐을 땐 신기하고 감격스러워 눈물이 날 정도였다. 세상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공감해 줄 때 나는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 브런치(스토리)라는 곳에 글을 쓰면서도 많은 이들이 공감과 응원을 보내줘서 기뻤다. 댓글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2022년 낸 책 <당신 덜 외롭게 걸어요>
2022년 낸 책 <당신 덜 외롭게 걸어요>진포
그렇게 쓴 에세이들을 모아 2020년 10월 첫 책 <77세, 머뭇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2022년 <당신 덜 외롭게 걸어요> 등을 냈다. 살면서 느끼는 이야기, 시낭송과 산책길 등 노년의 일상이 담긴 글이다. 글을 쓰고 내 글이 읽히고... 이러한 변화들 덕에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글쓰기를 통해 나를 탐구하고, 그 결과물로 다른 이들과 소통하는 것.

이런 과정을 거치며 점차 나는 마음이 회복돼 갔다. 내 마음은 넓은 바다를 유영하듯 자유로워졌다. 마음과 자세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나이듦과 병듦을 전보다 수용하는 자세로 변했다. 80을 바라보는 나이에 글을 쓰고, 주변에서 수없이 많은 응원과 격려를 받으며 나는 우울의 늪에서 점차 헤어 나올 수 있었다.
 
  서점에 놓인 내 책. 내 책 에세이집이 서점 매대 맨 왼쪽에 누워있다.
서점에 놓인 내 책. 내 책 에세이집이 서점 매대 맨 왼쪽에 누워있다.이숙자
 
우리 집엔 온 가족이 들어가 있는 단체 톡방이 있는데, 오마이뉴스에 보낸 글이 채택되면 나는 맨 먼저 여기에 알린다. 내가 쓰는 글은 어찌 보면 그냥 일상에서 겪은, 소소한 사는 이야기를 쓰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글을 쓰고 그 글을 읽은 남편부터 사위들, 딸들이 보내오는 응원과 격려를 받으면서 점차 자존감이 높아졌다. 나이 든 할머니의 모습이 어린 손자들에게도 교훈이 되어 줬다고 한다.

그렇게 우울증의 시기를 지나고, 자존감이 높아지면서 나는 달라졌다. 첫째는 나를 더 수용하게 됐고, 둘째로는 감사하는 일이 늘어났다. 이제는 남편을 바라보는 눈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더 너그러이 배려하는 자세를 갖게 되었다. 하루하루 눈을 뜨면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가족들이 있음에 감사하고, 나를 둘러싼 모든 일이 감사할 뿐이다.

우울은 어쩌면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겠지만, 우울증을 잘 지나가는 데엔 안부를 묻는 말 한마디와 따뜻한 시선 같은 주변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인생은 의외로 길고 지루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름답고 찬란하기도 하다. 어떻게 살다가 생을 마칠 것인가는 순전히 내 선택에 달려있다. 어느 시인은 말했다. '힘든 일이 있으면 글을 써보라, 누군가를 비판하는 글보다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고백적인 글이 더 효과있을 것'이라고.

나는 앞선 일련의 일을 겪으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한번뿐인 삶, 오늘 내 앞의 순간을 어떻게 살다가 생을 마감할 것인가는 오로지 우리의 몫이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감사하고 살 때 나는 내가 나답게 산다고 느낀다. 당신은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고 있으며 어떨 때 나답다고 느끼는가? 내 작은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글쓰기 #우울증 #당뇨 #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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