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소주 럭시히말라야 롯지에서 이도정 대장과 필자가 네팔 소주 럭시를 마시고 있다.
강재규
도반에서 다시 계곡을 지나 이어지는 높은 오르막길을 1시간 30분을 걸어서 히말라야 롯지(2920m)에 도착했다. 점심 식사 전 이도정 대장에게 이끌려 조용한 곳을 찾아 네팔의 소주인 따끈한 럭시를 한 잔씩 했다. "도정아, 이렇게 높은 곳에서 술을 마셔도 괜찮아?"하고 물었더니, "나하고 마시면 괜찮아"라고 했다. 흡연이나 음주는 고산병에 위험하다는 얘기를 들어 살짝 걱정은 됐지만, 친구는 히말라야 트레킹의 경험이 많으니 믿어도 될 듯했다. 그리고 양도 많지 않았으니 문제가 되지 않았던 듯하다.
다시 1시간 30분을 걸어서 힌쿠 동굴(3170m)을 지났다. 동굴이래야 머리 위로 큰 바위가 툭 튀어나온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3000m 고지대로 진입하는 단계라, 체력을 안배해 가며 몸이 고도에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천천히, 천천히(비스타리, 비스타리) 걸었다.
힌쿠 동굴에서 약 1시간을 더 걸어서 세 번째 숙소인 데우랄리 롯지(3200m)에 도착했다. 롯지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구름이 몰려들었다. '30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란 이런 것이야'라며 보여주려는 듯이 말이다. 기온도 갑자기 떨어졌다. 구름으로 뒤덮여 금방 눈이나 비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조금 움직이니 숨이 가빠지는 느낌이었다.
다음 날 있을 MBC, ABC 트레킹이 슬슬 걱정이었다. 사전에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보거나, ABC 트레킹을 마치고 내려오는 이들에게 ABC 상황을 물었을 때 들었던, "너무 추워 얼어죽는 줄 알았다", "두꺼운 패딩 점퍼까지 껴입고 침낭 속에 들어가도 추워서 잠 한숨 못 잤다"라는 말이 빈말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어쩌랴? '여기까지 왔는데, 부딪혀 보는 거지 뭐!'
이튿날 아침, 데우랄리의 아침은 쾌청했다. 지난밤에 몰려들었던 짙은 먹구름은 사막의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그 많던 구름이 눈으로 내려 얼어붙었다면 마지막 남은 MBC와 ABC 트레킹은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아이젠을 꺼내 등산화에 장착해야 할 것이고, 걸음도 느려져서 트레킹에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맑게 갠 날씨가 고맙고도 감사했다.
고산증 특효약은 '하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