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공장 옥상에서 투쟁을 외치고 있는 소현숙조직2부장(왼쪽)과 박정혜수석부지회장(오른쪽)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경상북도 구미시 4공단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이 있다. 20년간 총매출액이 7조 7천억 원가량이며 노동자 최대 인원 약 700명, 1만 2천 평 부지에 세워진 큰 공장이다. 2022년 10월 4일 공장에 불이 났고 회사는 화재보험금으로 1300억 원을 받았다. 공장을 재건하는 비용의 약 2배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한 달 후 회사는 청산을 선언하며 노동자 전원에게 희망 퇴직서를 내밀었다. 이를 거부한 11명의 노동자가 불탄 공장을 지키며 싸우고 있다. 이들은 평택에 위치한 쌍둥이 회사로 고용승계 하길 요구하고 있다. 사측은 노동조합의 요구를 거부하며 청산의 마무리 절차로 불탄 공장을 철거하려 하고 있다.
2024년 1월 8일 두 여성 조합원이 공장 옥상으로 올라갔다. '고용승계 없이 공장 철거 없습니다'라며 고공농성을 시작한 것이다. 수많은 언론이 마이크를 들이밀었고 촬영을 위해 드론도 띄웠다. 언론은 노사 갈등, 투쟁 계획 등에 대해 많이 물었다. 그러나 고공 농성자가 아래에 있는 동지들을 생각하는 마음, 아래에서 고공 농성자를 향한 애타는 마음을 취재한 곳은 없었다.
고공에 올라간 소현숙 조직2부장과 아래를 지키는 배태선 민주노총 경북본부 교육국장, 이열균 문체부장을 인터뷰해서 정리했다. 이들은 '소현숙'이라는 우주에서 가능성을 찾고 새로운 면을 보며 소현숙씨의 투쟁력에 '소며들고' 있었다.
Part.1 태선씨의 마음
조금은 엉뚱하고 조금은 숨겼던
현숙씨를 처음 보는 사람은 엉뚱한 느낌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흔히 4차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굉장히 잘 웃고 맑다. 혼자 뭐 하는진 잘 모르지만 혼자 있는 것도 좋아한다. 고공에 올라간 후 현숙씨가 많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소극적이었던 사람이 점점 투사가 된다는 거다.
그런데 현숙씨가 바뀌었다기보다는 사람들이 현숙씨를 조금 더 알게 된 것 같다. 현숙씨가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다가 이제 드러내게 됐기 때문이다. 현숙씨는 원래 심지가 강하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옳으면 바로 실행하는 사람이다.
필요하면 하는 사람이구나
옵티칼에 연대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큰 사거리에서 선전전을 했다. 투쟁가만 틀고 마이크 잡고 시민에게 말하는 건 안 했다. 그래서 우리 상황을 녹음해서 틀면 좋겠다고 조언해 줬다. 다음 주에 와보니 녹음한 걸 틀고 있었다. 깜짝 놀랐다. 보통은 이렇게 빨리 못한다. 조합원들이 자기 목소리를 녹음하고 듣는 걸 쑥스러워하기 때문이다. 현숙씨가 대본도 쓰고 녹음도 했다고 했다. 주도적이고 주체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아, 이 사람은 필요하면 하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정당하면 딴생각할 필요 없어
작년 여름에, 회사가 노조 사무실에 물을 끊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와서 현장 조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서 고함이 들렸다. 현숙씨였다. 나가보니 조합원들이 조사관과 이야기하는 사이에 사측 사람들이 공장 안으로 들어온 거였다. 현숙씨가 혼자 "여기 왜 들어왔어요! 나가요!"라며 막고 있었다. 평소엔 소극적이고 조용한 사람이 똑부러지게 싸우고 있었다.
작년 12월 중순, 청산인과 인부가 찾아왔다. 청산인은 현숙씨에게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고 위압적으로 말했다. 현숙씨는 "너나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고 받아쳤다. 두 사람 사이의 반말 설전은 꽤 이어졌다. 현숙씨는 예의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때 청산인의 태도를 보고 '이 사람에게 지금 어떻게 대해야 할까'를 순간적으로 판단했을 거다. 그리고 그 판단에 따라 행동했을 것이다. 현숙씨는 정당한 일이면 다른 건 안 보고 바로 실행하는 사람이니까.
현숙씨는 고공농성 투쟁을 잘하고 있다. 태선씨는 앞으로도 현숙씨가 잘할 거라고 믿는다. 그래도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현숙씨, 위에서도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운동도 좀 해요. 먹고 싶은 과자 있으면 꼭 말하고요. 다 올려줄게요."
Part 2. 열균씨의 마음
누나가 마음을 열면
현숙이 누나랑 집이 가깝다. 차로 5분 거리다. 투쟁 초반, 누나가 아침마다 버스로 선전전 시간에 맞춰오는 걸 힘들어했다. 그래서 카풀을 했다. 상대가 누구든 농담으로 분위기를 유하게 만드는 걸 좋아해서 차에서 누나랑 대화하는 시간도 재밌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이 누나의 마음을 조금 열리게 한 거 같다. 누나도 카풀하는 시간이 즐거운지 내가 늦는다고 하면, 기다려서라도 같이 갔다.
'누나가 내가 좀 편해졌나 보네.'
조금 기쁘기도 했다. 사람들은 누나가 표현을 잘 안 한다고 하지만, 사실 누나는 누구보다 표현을 잘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마음을 연 사람에겐 지각을 해도 웃으며 "왔어?"라고 말한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한텐 아예 말을 안 건다. 누나가 표현을 안 한다는 사람은 누나를 잘 모르는 거다.
누나는 양파같은 사람이다. 까도 까도 새로운 면이 있고 그 면을 내게 보여주었을 때(혹은 내가 먼저 눈치챘을 때) 조금 즐거운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