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옵티칼투쟁문화제에서 발언하는 김진아 kec 지회장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정문에서 하는 집회에서 김진아 KEC 지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2024년 1월 8일 오전 6시 40분경, 박정혜 수석부지회장과 소현숙 조직2부장이 고공에 올랐다. 고용승계를 향한 절박함이 두 사람을 움직였다. 진아씨는 소식을 듣고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고공? 정혜가?' 바로 옵티칼로 달려갔다. 이미 두 사람은 고공에 올라간 상태였다. 진아씨는 예전에 김진숙 선배가 고공농성 했을 때가 떠올랐다. '선배 대단해요' 한마디 하지 못하고 위로 고개만 치켜들고 있었던 자신이 떠올랐다. 이번에도 그랬다. '정혜야 정말 할 수 있겠어?'라고 한마디만 하면 되는데, 그게 안 나왔다. 한참 전에 여러 투쟁 이야길 하면서 수다를 떤 적이 있다. 그때 정혜가 물어본 적 있다.
"언니는 단식, 삭발, 고공 이런 거 해봤어요?"
"나는 공장 점거를 해봤지. 그런 건 안 해봤어. 그리고 나 고소공포증 있어."
웃으며 장난스럽게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정혜야, 나도 안 해봤는데 너가 하는구나' 애가 탔다. 정혜는 항상 씩씩하고 든든한 동생이었다. 정혜는 분명 잘 버틸 거였다. 하지만 고공농성 투쟁은 어렵고 외로운 싸움이다. 정혜는 이제 투쟁한 지 1년을 조금 넘긴 병아리다. 조금씩 알아가며 걸음마를 떼어가는 아인데. 갑자기 뜀틀을 넘고 있었다. 잘 해낼 거란 믿음과 불안함이 마음속에서 충돌했다.
내가 원래 이런 성격이 아닌데
지난 열흘간 진아씨는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잘 있는지 전화 한번 하고 싶었다. 그런데 엄두가 안 났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진아씨는 자신이 매번 일을 저지르는 편인데 이번엔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 갔다. 문자 하나 보내는 게 이렇게 힘들었나 싶었다.
며칠 전 밤, 옵티칼 조합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정혜한테 영상통화가 왔다. 한명 한명 전화기를 건네받으며 인사를 나눴다. 진아씨도 전화기를 받아들었다. 화면을 쳐다보기만 하면 되는데, 고개가 자꾸 아래로 갔다. 정혜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언니는 전화 한번 안 하고..." 정혜가 말했다. 그 말이 마음에 박혔다.
옵티칼에 없을 때도 눈앞에 정혜랑 현숙이가 아른거려 일이 손에 안 잡히고 잠도 안 온다. 옵티칼에 오면 바로 고공 농성장으로 눈이 간다. 옵티칼에서 철야 농성을 하는 날엔 새벽까지 괜히 밖을 서성인다. 고공농성장을 쳐다보면서 운동장만 돈다. 분명 잘할 거고, 이미 잘하고 있는데 마음이 요동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틀 전, 큰마음 먹고 전화기를 들었다. 문자를 보냈다. 연락 안 해서 미안하다고. 지금 정말 잘하고 있다고. 건강해야 한다고. 답장이 금방 왔다. '언니 괜찮아요. 아래 우리 언니, 동생 조합원들 잘 부탁해요' 맞다. 정혜는 그런 애였다. 주변 잘 챙기고 배려심 많고 책임감 강한 애. 마음이 아팠다.
괜찮아 언니 있잖아
정혜는 고공에 올라가기 전에도 자기 힘든 걸 조합원들에게 털어놓지 못했다. 수석이라는 자리 때문에도 그랬고 힘든 걸 말하면 조합원들이 더 힘들어할 거 같다고 했다. 그래서 진아씨말곤 딱히 털어놓을 곳이 없었다. 둘이 얘기를 많이 했다.
"언니, 저 수석 잘할 수 있을까요? 좀 무서워요."
"사람들하고 얘기를 잘해야 하는데 너무 어려워요"
"언니 잘 모르겠어요. 못하겠어요."
그때마다 비슷한 말을 했다. "잘할 수 있어. 언니 있잖아."
정혜를 편하게 해주려고만 한 말은 아니었다. 정혜는 항상 고민하는 성격이었다. 그런 성격이라면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면 정혜는 "언니, 저 잘 참을 수 있어요. 괜찮아요"라고 했다. 안쓰러웠다. 한편으론 예전 생각도 났다. '나도 맨날 언니들 붙들고 어렵다, 못하겠다고 말했었는데. 그러면 언니들이 나 안쓰럽게 봤는데.'
정혜야 고마워
정혜를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난다. 행복하고 건강하게만 살았으면 좋겠는데, 고공에 올라가서 고생하는 게 괜스레 미안하고 울컥한다. 그때마다 눈물을 겨우 참는다. 지금은 울 때가 아니니까. 우는 게 아니라 아래 있는 동생들을 안아주고 보살펴야 하는 때니까. 얼른 같이 잘 싸우고 이겨서 애들 내려오게 해야 할 때니까.
진아씨는 마음이 너무 복잡해서 자신의 마음을 자기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혜한테 하고 싶은 말은 있다. "나도 내 마음을 잘 몰라서 뭐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이렇게 말하면 조금 표현될까? 정혜야 고마워."
Part 2. 지영씨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