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처럼 빛나던 그 아이
임태희
나는 잠시 쭈뼛쭈뼛 거리다가 아이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 작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트랙의 하얀 선을 따라서 아이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아이 곁에 다다랐을 때 아이가 나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아빠로 보이는 덩치 큰 사내는 저만치 앞서 뛰듯이 걷고 있었습니다.
"나는 해왕성이니까 여기로 걸을 거예요."
아이는 트랙 가장 바깥쪽 선을 따라 걸으며 말했습니다.
"이모는 천왕성, 나는 해왕성."
나는 소리 내어 웃으며 아이를 바라봤습니다. 아이는 태양계 행성 순서를 내게 야무지게 가르쳐주며 우리가 왜 바깥쪽 트랙을 따라 걸어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이가 신고 있는 운동화에서 연두색 불빛이 번쩍거렸습니다. 밤인 데다 롱패딩에 붙어있는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아이의 얼굴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목소리가 귀여웠습니다. 키가 내 허리에도 못 미칠 만큼 작은 것을 보면 유치원생인 듯했습니다.
한 바퀴를 거의 돌았을 때 아이가 신발을 질질 끌며 참새처럼 종알대기 시작했습니다.
"어이구. 아빠는 아직도 소화가 되려면 멀은 거야. 도대체 언제까지 빙빙 돌아야 하는 거야."
아이는 혼잣말처럼 한참을 투덜거리다가 참새가 휙 날아가듯 운동장 한가운데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운동장 중앙에 아이의 엄마와 할머니인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며 서성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아이 가족들의 대화를 슬며시 엿들으며 계속 걸었습니다. 아이는 올해 여섯 살이라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가 말도 잘하고 참 똑똑하네요.'
이 말이 입안에 고여 맴돌았지만 왠지 수줍어서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잠시 후, 아이와 가족들이 운동장을 떠나고 난 후에도 나는 조금 더 남아 걷기로 했습니다. 미소를 머금은 채 아이가 시킨 대로 천왕성 트랙을 따라 계속 걸었습니다. 트랙을 따라 빙빙 도는 것이 늘 지루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천왕성이라서 이렇게 도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참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