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13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2차 국무위원 후보 및 대통령 비서실장 인선 발표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법무부 장관에 내정된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
인수위사진기자단
누칼협을 시대의 소명이라고 여기는 이들의 등장은 기성의 정치세력 모두에게 난해하다. 기성의 세력들은 그들의 가치를 기준으로 진영을 만들고 상대 진영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기반으로 정치를 영위해 왔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시대의 정치 주체에 대해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기성 정치권은 그동안 이들을 제 멋대로 '자기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자칭) 민주진보진영은 그들을 세련되고 권위주의에 염증을 느낀 세력이라고 생각해 자기들의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민주진보진영의 편이라기보다는 그 상대가 속칭 '후졌기 때문에' 같은 편처럼 보였던 것에 가깝다. 권위주의 정권 이후 제대로 자유주의와 사회적 성숙을 이루기 전에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드러난 그 '후짐'에 대한 반대를 '우리 편'이라고 착각한 셈이다. 그들은 민주진보진영이 여전히 진영주의적이고, 공정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아서 '마찬가지로 후졌다'는 판단이 들자마자 여지없이 떠나버렸다.
(자칭) 애국보수세력은 그들을 합리와 자율, 성과와 효울에 익숙한 세대라고 생각해 자기들의 편이라고 생각했다. 시장주의에 입각한 능력과 성과주의가 새로운 세대의 세계관일 것이라고 무작정 믿어버렸다. 그러나 그들을 포섭하기엔 기성의 보수주의자들은 시장주의자도 아니었고 성과도 없고, 효율적이지도 않은 꼰대였다.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정권의 정책 어디에 성과와 효율과 능력이 있나. 그저 있는 것은 '인 마이 포켓'과 '최순실'과 '소맥'뿐인데. 그들은 그냥 어쩔 수 없이 후졌다.
이 와중에 나타난 한동훈은 앞서도 말했듯 이 새로운 세력 (혹은 세대)에 가장 적합한 정치인처럼 보였다. 그는 권위적인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이념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세련돼 보였다.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된 이후 그는 운동권 정치를 청산하겠다며 정적들을 청산대상으로'만' 규정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조합과 서민들, 어쨌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세력들을 악마화하며 '카르텔'을 운운하는 정치를 그대로 답습하는 모양새와 같다. 이 대결적 구도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등장한 이후 줄곧 고수해 오던 '탈진영', '합리성'의 이미지를 갉아먹는다. 결국 민주당, 또 한동훈 비대위원장이(어쩌면 윤석열 대통령이) 그토록 청산하고 싶어 하는 그의 정적들의 주장대로 '윤석열 아바타'라는 프레임만을 제공하면서.
그러는 동안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기성의 정치와는 다르게 합리적이고 맹목적이지 않은 율사라고 믿었던 그의 지지세력들은 떠나간다. '역시 저 집안은 후졌지'라고 판단하면서.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지금 보여주는 행보는 그를 새로운 정치지도자로 인식하며 지지를 보내주던 이들의 요구와는 궤를 달리한다. 그는 오히려 그가 속한 '진영'의 정치 언어로 퇴행한 셈이다. 그 진영의 기성정치인들은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그 지지율을 자기 진영의 지지율로 끌어오길 기대했겠지만, 그 지지 세력은 몇 번이나 그랬듯 '후지다고 여겨지면 가차없이 떠나는' 세력이다(실제로 탄핵정국을 만들었고,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기도 했다가, 윤석열과 한동훈을 지지하기도 했던 그들이다).
그렇다고 한동훈을 떠난 지지율이 민주당과 이재명의 지지율로 흡수될 까닭도 전혀 없다. 민주당은 유사이래 가장 높았던 지지를 파산시켜 사람들이 윤석열로, 한동훈으로, 아니면 정치혐오로 떠난 이유조차 규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낡은 진영주의에 파묻히거나, 음모론에 기반한 적대의 정치에 머무는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으로 느껴지는 세력에게 '합리와 이성으로 자신을 무장'했다고 믿는 이들은 지지를 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지금의 정치는 마치 X(전 연인)에게 "그래도 내가 낫지 않냐"며 다시 돌아오라고 구애하는 티빙 예능 <환승연애>의 장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본래 X는 남보다도 못한 법이고 헤어진 데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하물며 자기가 왜 차였는지도 모르는 X라면 고민할 것도 없지.
새로운 전선, 천박하지 않은 시대정신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