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 남성(자료사진).
픽사베이
하인숙과 하룻밤을 보낸 윤희중은 결국 서울로 데려가겠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무진을 떠난다. 그는 무진을 떠나는 버스 차창 밖으로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적혀 있는 팻말을 본다. 윤희중을 믿었던 하인숙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지기도 하고 잠깐 바람을 핀 윤희중이 다소 역겹기도 하고 결혼을 사랑으로 하는 게 아닌 속물적으로 계산하는 조에 씁쓸하기도 하다.
나아가 작가는 이런 뚜렷하지 않은 삶과 사랑의 실체들을, 무진을 둘러싼 안개로 덮어버리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아마 윤희중은 서울로 돌아가서 아내와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을 살아가며 성공을 향해 나아가며 과거는 잊어버릴 것이다. 하인숙에게 썼던 편지를 찢어버렸듯이...
이상과 현실, 당신이 둘 중 택해야 한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삶의 고뇌와 허무 속에서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는 게 아닐까. 윤희중은 가슴 떨리던 사랑을 포기하고 결국 현실을 택했다, 그게 정말 사랑이었는지도 의문이지만. 소설이 김승옥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바탕이 된 것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나도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용솟음쳤다. 만약 나라면, 이상과 현실 속에서 현실을 택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상을 부여잡으며 현실도 아주 사랑이 충만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써볼 것 같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결혼 후 이야기 같은.
꿈이 너무 큰 것일까? 이러한 점이 소설 속 윤희중과 나의 공통점 같다. 공상을 정말 많이 한다는 점 말이다. 나는 내 작가적 재능이 풍부하다고 느끼고, 그래서 더 작가가 하고 싶다. 작가가 고향인 순천을 배경으로 <무진기행>을 쓴 것처럼 나는 내가 20대 중반에 살았던 경북 영양을 배경으로 써보고 싶다. 소설 속의 개구리울음소리와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 같은 청각적, 시각적 묘사를 보며 딱 그때가 떠올랐다.
<무진기행>은 안개를 소재로 해 이상과 꿈이 안개에 갇혀버리는 쓸쓸한 이미지를 연상시키지만, 내게는 오히려 반대의 효과를 냈다. 뿌연 안개와는 달리 앞으로 좀 더 밝고 뚜렷한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해 준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현실에 치여 사랑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을 현실에 저당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오랜만에 아주 즐거웠다, 이제 작가의 다른 소설도 읽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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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심어주고 싶은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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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보다 이상향 따라... 더 뚜렷하게 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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