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PACS(시민연대계약)는 이성, 동성 구분 없이 폭넓은 가족 구성 권리를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등록 동거혼보다는 생활동반자법에 훨씬 가깝다.
언스플래쉬
<조선일보> 취재에서 저출산위 관계자는 저출산의 주요 원인은 젊은 세대가 결혼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이라며, 이 부담을 낮추는 것이 도입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당연히 동성 간 동거혼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설명이 따라 붙는다. 윤석열 정부의 입장은 가족 구성권에 대한 국민들의 보편적 접근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필요에 따라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있는'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만 선택지를 확대하는 방안이다. 대한민국은 어떠한 국민이라도 환영하며 인간다운 삶을 보장한다는 확고한 약속이 없는 저출산 대책이 먹힐 리가 없다.
'동거가구 인정' 등 다양한 가족에 대한 지원 제도를 저출산 해결의 맥락으로만 제기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쩐지 임신을 시키기 위해 합사된 가축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동거 가구 차별 해소 논의의 초점이 저출산에 맞춰지면 출산할 의사나 능력이 없는 가구는 다시 차별의 대상이 된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많고 위기인 1인 가구는 노인 1인 가구다. 특히 70대 이상 여성노인 1인 가구의 수가 압도적이다. 이들은 소득이 적고, 건강상 위기에 빠지기 쉽고 여러 비상 상황에 처하기 쉬운데다가 병원·관공서·은행 등에서 가족의 도움을 받아야 할 필요가 크다. 그런데 기존의 혼인제도로 새로운 가족을 만들기가 매우 어렵다. 이들은 외롭고 가난하고 위험하게 방치되고 있다. 여성 노인들은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돌봄을 주고받으며 살고 싶다는 욕구를 가진 존재로 전제되지 않는다.
여성 노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갈수록 많은 이들이 마땅한 방법이 없어서 가족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KB경영연구소의 <2022년 한국 1인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혼자 사는 이유로 비자발적 요인(82.7%)이 자발적 요인(61.4%)보다 많았다. 그런데 비자발적인 이유로 1인 가구가 되었다면, 기회를 봐서 가족을 만드는 게 합리적인 결정일 것이다. 그런데 '1인가구를 지속할 의향이 어느 정도냐'는 질문에 '높다'는 응답이 56.3%로, '낮다'의 '9.9%'보다 월등히 높았다. 정리하면 한국의 1인 가구들은 어쩔 수 없이 비자발적으로 장기간의 독거 생활로 내몰리고 있다.
출산만을 염두에 둔 등록 동거혼으로는 이러한 광범위한 고독과 돌봄 공백을 해결할 수 없다. 70대 여성 노인들에게 이제 새로운 남성 연인을 만나 등록 동거를 하라는 게 현실적인 주장인가? 등록 동거혼은 '법률혼-등록 동거혼-법외 가족' 이라는 또 다른 가족 형태에 따른 위계와 차별을 만들어낸다. 그 기준은 사회에 필요한 재생산을 해내느냐는 생산성일 것이다. 보편적 권리로서의 돌봄과 가족구성의 권리는 사라진다.
동성 커플 막자고 국민의 권리 포기?
정부가 생활동반자법 등 더 보편적인 가족구성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이성 간의 등록 동거혼만을 도입하는 것은 동성 커플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법무부 장관 재직 중이던 2023년 8월 15일, 페이스북 등에 글을 올려 생활동반자법에 대해 '동성혼 제도 법제화를 포함'한다고 주장하며 입법에 반대한 바 있다. 한동훈 장관은 이 글에서 생활동반자법 자체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평가를 하지 않고, 오로지 동성혼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기 때문에 생활동반자법도 입법할 수 없다는 이상한 논리를 전개했다.
일단 생활동반자법은 '혼인'이 아니기에 '동성혼'도 아니고, 동성 사이에만 적용되는 법도 아니며, 동성 사이라고 하더라도 친구나 돌봄 관계 등 비성애적 관계도 포함하는 법이다. 동성 연인들도 물론 이용할 수 있겠지만, 그건 생활동반자 관계의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일단 생활동반자법을 동성혼과 등치하는 것은 논리적 오류이며,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기대 더 많은 국민들을 위한 보편적 입법을 막고 있는 꼴이다.
동성 커플을 미워하고 그들을 모든 사회적 권리에서 배제하는 것이 그렇게까지 꼭 필요한 일인가? 왜 그게 이토록 중요한 정책 목표가 되어야 하는가? 이 거대하고 심각한 고독과 빈곤, 돌봄 공백을 극복하는 것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게 더 급한가? 동성 커플들에게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머지 국민들에게 무슨 이익이 있는가? '동성애자 미워하기'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모든 국민의 보편적 권리를 틀어막고 있어야 하는가? 생활동반자법뿐 아니라 차별금지법, 학생인권조례 등도 마찬가지다.
가능한 많이 사랑하고 포용하는 정책을 해야지, 누구 하나 미워하기 위해 다 같이 권리를 포기하는 정치를 언제까지 용납해야 하는가. 쟤가 먹는 게 싫어서 다 같이 굶자는 정치로 미래로 갈 수는 없다. 누군가는 성소수자를 싫어한다. 각자 속으로 미운 마음이 드는 것까지 어쩌겠는가. 사회적 소수자에게도 국민으로서 같은 권리를 줘야 한다는 주장은, 어쩌면 어떤 사회에서도 영원히 만장일치의 합의에 다다르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가 기꺼워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명확한 이유 없이 권리를 배제하는 정치는 결국 국민 전체의 기본권을 훼손하게 된다.
누군가의 강력한 미움을 받는다는 이유로 법적 권리를 주지 않아야 한다면, 윤석열 대통령부터 대통령직에서 내려와야 논리적으로 맞을 것이다. 누군가 '동성애를 허용'해서 나라가 망한다고 말한다면,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을 허용한 대만이 18년 만에 대한민국의 GDP를 넘어섰다고 답하고 싶다. 동성혼 입법을 주도한 민진당의 차이잉원의 적극적 과학기술 개발 지원과 산업 정책이 이유로 꼽히고 있다. 나라를 망치는 건 과학기술 R&D를 칼질하거나 멀쩡한 국토를 분쟁지역으로 인정하는 것이지, 생활동반자법 따위론 나라를 망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