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위패 모신 영가전 모습
김영희
6월 25일 진주 위령제 날
사천유족회장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다. 2021년 6월 25일 진주위령제 행사를 초전공원 위령탑에서 실시했다. 필자도 위령제에 참석했다. 이제는 진주 유족분들과는 포옹도 할 정도로 편하게 지낸다. 귀빈 소개에서 사천유족회장님을 유심히 보고 있다가 행사 마친 후 인사를 하고 이봉환 어르신(사천 유족)의 연락처를 받았다.
어느 날 통화에서 가슴이 철렁
며칠 후 이봉환 유족(86)께 전화를 드렸다. 잠시 소개도 제대로 하기 전에 몇 마디 듣지도 않고 화를 벌컥 내시면서 전화기 속에서는 뚜뚜뚜 소리만 들린다. 사실 필자는 항상 유족과 통화할 때는 매우 조심스럽고 긴장된다. 72여 년간 유족들의 상흔을 들추는 일이기에 미안하고 또 죄송스럽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화가 끊기고 말았다.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래도 시작은 했으니 끝을 봐야지 하면서 용기를 내어 다시 통화를 시도했다.
전화 신호가 간다.
"여보세요. 어르신, 제발 잠시만 제 말 들어 보시면 안 될까요?" 순간 적막이 흐른다.
"뭔지 말해보시오."
조심스럽게 필자의 신분과 사정을 설명한 뒤 말씀드렸다.
"사천에는 지금 매장지가 사천(삼천포) 노산공원과 고성군 하일면 질매섬 그리고 용현면 석계리 온정마을이 있다고 하던데 혹시 저하고 동행해 매장지를 안내해 주실 수 있을까요?"
"뭐 그렇다면 동행해 드리리다. 나도 농사짓고 바쁜데..."
그렇게 약속을 정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숨을 돌리니 마음도 한결 가벼웠다. 사실 진주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사천인데, 사천 매장지에는 어떤 사연이 있고 현재 상황이 궁금했다.
학살지 질매섬(마안도) 이야기
삼천포 벌리동에 거주하고 계시는 이봉환 어르신을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저만치에서 키가 훌쩍 큰 분이 모자에 지팡이를 짚으면서 걸어오신다. 인사를 가볍게 하고 필자의 차에 모셨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몸도 불편하신데 안내해 주셔서요."
"좋은 일 하신다는데 내가 당연히 안내해야지요."
"어르신 상처를 다시 되새기게 해서 미안합니다. 세 곳 중 어디부터 먼저 가실까요?"
"나는 질매섬과 노산공원만 안내해 주겠소. 온정마을은 나도 잘 모른깨..."
"질매섬은 어디로 가면 됩니까?"
"내가 길을 아니깨 그냥 가시오."
질매섬은 경남 고성군 하일면 춘암리에 속한 무인도로 사량도와 하일면 사이에 있는 섬이다. 질매섬에서 학살당한 사람은 300여 명으로 추정한다. 질매란 길마의 사투리다. 길마는 소나 말 위에 얹는 안장같이 생겼다고 하여 길마, 즉 마안도(질매섬)이라고 한다. 옛적에는 사람이 살았고 거주 당시 평평하게 일궈놓은 밭도 있었다. 학살은 그곳과 모래톱에서 자행됐다.
질매섬을 자세히 보면 섬 둘레에 하얀 모래톱이 형성돼 있다. 이것은 물살이 세다는 뜻이다. 겉으로 바라보니 아름답기 그지없는 섬이지만 이런 곳이 학살지라니 가슴이 아프다. 왜 질매섬을 학살지로 선택했는지 궁금했는데 어르신이 말씀하신다. "이곳은 물살이 아주 센 곳이야! 그리고 뱀이 많이 서식했어." 역시 계획적이고 고의적인 학살 만행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악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상해죄로 끌려간 형님이 보도연맹원으로 둔갑돼
질매섬으로 이동하는 동안 어르신과 대화는 계속된다.
"학살당한분은 누굽니까?"
"한국전쟁 당시 맏형 이연조(당시 28세)씨가 동네 구장이었던 이○○(아버지 4촌)씨의 상해죄 고발로 삼천포 남양지서로 끌려갔는데, 이후 보도연맹원으로 둔갑돼 삼천포경찰서에서 노산공원으로 끌려가서 학살당했어요."
"형은 어떤 분입니까?"
"맏형(이연조)은 삼천포 일출초등학교(현재 삼천포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유학 가서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북해도 와니시 제철공장 지배인으로 지내다가 1949년 2월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해 4월에 곧바로 결혼하고 이듬해인 1950년 음력 6월에 끌려갔어요."
"왜 상해죄인데 보도연맹원으로 둔갑됐습니까?"
"형이 끌려가기 전날 밤에 구장(이○○)과 지서 주임이 동생(이권환) 군대 소집영장을 전달하러 왔고, 그렇게 동생은 군대에 끌려간 후 형은 구장에게 동생의 영장 문제로 항의하는 과정에서 다툼이 있어 형이 구장에게 빰 한 대 때렸는데 구장은 제중병원에 3주 상해 진단을 끊어 형을 고발해버렸어요."
"구장이 아버지 사촌인데 왜 그런 짓을 했어요?"
"그러니깨 구장이 나쁜 놈이었어요. 형이 끌려가고 3일 후 아버지도 경찰서에 연행됐어요. 부자가 경찰서에 같이 있었는데 다행히 아버지는 아침에 석방됐어요.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셔서는 '아마 트럭에 사람들을 싣고 갔으니 죽였을끼다. 그 장소는 질매섬으로 들었다'라고 하셨습니다."
질매섬을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춘암 포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질매섬에 도착했다. 어르신이 질매섬을 찾은 지 시일이 오래돼 방향을 헷갈려하셨다. 동네 주민께 여쭤본 뒤 질매섬이 잘 보이는 춘암포구에 도착했다.